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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는 생각은 항상 든다

그래도 하는 게 맞다

by 푸른푸룬


금요일 저녁, 내 사무실 자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 급한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역시 주말이라 그런 것인지 윗분들도 다들 일찍 들어가셨다.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서, 한참 뒤에나 올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으로 서둘러 내려간다.


4711160.jpg 야호! 이제 주말이다!


금요일인 오늘은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 친구가 새집으로 이사를 해서 집들이 겸, 오랜만에 친구도 볼 겸 가기로 했다. 그 집까지는 회사에서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조금 넘게 가야 할 정도로 거리가 조금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약속 시간까진 아직 넉넉하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앱을 켜 버스 시간을 확인해본다.


4분 전 (2정류장 전)

다음 버스: 45분 전 (18정류장 전)


약속 시각은 넉넉했지만 버스 시간은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다. 미리 시간을 좀 보고 나올 걸 싶었다. 돌아가 사무실에 더 앉아있다가 나올까 싶다가도, 이미 관성의 법칙처럼 계단을 저절로 내려가고 있는 두 다리를 멈추고 몸을 돌리기는 또 싫다. 내려가면서 동시에 생각해본다. 계단을 내려간 뒤 건물을 나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대략 10분, 뛰어도 5, 6분은 걸릴 것이고, 그럼 아마……. 생각해보니 버스를 놓칠 듯하다. 하지만 그냥 버스를 보내주기엔 다음 버스가 너무 늦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밖으로 나왔다.


businessman-with-umbrella-rainy-city.jpg 퇴근길,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건물을 나오고 나니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다행히 예보를 보고 챙겨 온 우산을 펴 쓰고, 회사 밖으로 걸어 나온다. 뛰어볼까 잠시 생각하지만, 다시 망설여진다. 우산을 들고뛴다면 우산이 다 뒤집혀서 쓰느니 못할 것 같다. 옷도 다 젖을 것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냥 걷기만 했는데도 거센 바람에 우산이 뒤집힐락 말락 흔들거린다. 날려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좀 강해서 비가 우산을 스쳐 몸 안쪽으로 들이친다. 한 손으로 흔들리는 우산을 꽉 쥐어 잡고는 남은 한 손으로 핸드폰을 다시 켜서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4분 전(2정류장 전)

다음 버스: 41분 전(17정류장 전)


아직도 2정류장 전이다. 퇴근길에 차가 막혀서인지 아니면 GPS가 오류인지 아직 그대로인 남은 시간에 의아하다. 그렇지만 정류장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저 멀리 모퉁이를 꺾은 다음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 4분 안에 갈 수 있을까? 뛸까 말까 생각을 반복해보지만, 비가 오기도 하고 뛰어도 4분 안에는 못 갈 것 같다. 그냥 다음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버스까지 40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생각과 함께 걷다 보니 벌써 모퉁이에 도달해서 몸을 꺾고 있다. 이제 저 멀리 정류장이 보인다. 걸으면 3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3분 전(1정류장 전)

다음 버스: 34분 전(14정류장 전)


이상하다. 이미 저 정류장을 지났으리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핸드폰을 보니 버스는 아직도 도착 전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걷는 속도를 올린다. 빨라진 걸음과 함께 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올라온 그때, 옆에 빨간색의 큰 물체가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쳐간다.


‘......., 어? 어?’


nikky-w-G9Zhbo5v_iA-unsplash.jpg 아, 안돼......, 거기서!


저 버스다! 저 버스가 내 버스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몸이 반응해서 저절로 뛰어지기 시작한다. 버스는 이미 빨간 브레이크등이 켜지며 저 멀리 정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선택할 것도 없이 내 두 다리는 이미 온 힘을 다해, 마치 육상선수가 100m를 달리는 것처럼 최대한 휘젓고 있다. 동시에 비가 온 탓에 바닥에 발이 세게 닿을 때마다 찰싹 소리와 함께 물이 사방으로 다 튀긴다. 손에 들고 있던 머리 위로 쓰인 우산은 이미 홀랑 다 까뒤집어져 마치 행위예술을 하는 것 같다.


‘이야……! 으아……! 잠……, 깐……! 잠……, 깐……, 만! 제……. 발……!’


소리 없는 내면의 소리. 내 간절함의 소리가 저 버스의 기사님에게 닿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이미 출발하고 있는 버스.


“하아…….”


숨이 차서인지 안타까움에서인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뜀걸음이 점차 늦춰지더니, 결국 자리에 멈추어져 떠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거꾸로 뒤집어진 우산을 원래대로 뒤집어 다시 쓴다. 바지는 이미 다 젖었다. 어차피 못 탈 거 괜히 달렸나 싶은 허탈감이 몰려온다. 아니, 그보다도 사무실에 나올 때부터 천천히라도 달렸다면 탈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더 어이가 없다.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나머지 걸음을 터벅터벅 걸어 정류장에 도착한다.


34분 전(14정류장 전)

다음 버스: 없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뛰었더라면, 아니 빠른 걸음으로라도 걸어왔더라면, 모퉁이에 도달하기 전까지 달려왔더라면, 그랬다면 버스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면서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객관적으로, 수치와 데이터가 정확하게 그렇게 보였다. 결과적으론 아니었지만.


andy-beales-BjcGdM-mjL0-unsplash.jpg 늦었어도 가능성은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떠오른다. 누구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었다고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늦음을 알아차린 다음, 그다음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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