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혹은 자유
“지잉~”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중에, 갑자기 스마트폰 알람이 왔는지 진동이 울린다.
[ ‘OO’(으)로부터 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
월급날이었다. 이번 달에도 지정된 날에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 이 돈으로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고, 후식으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원하게 한잔 할 수도, 달콤한 케이크를 입안 가득 먹을 수도 있다.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옷도 사려면 살 수 있고,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들도 인터넷으로 방에서 편하게 주문할 수 있다. 원하면 적금을 넣어 차곡차곡 저축을 할 수도 있다.
일하는 보람이자 물질적인 보상, 내 시간과 교환된 금전적 가치인 월급은 여기서 일을 하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이제는 매달 들어오는 돈에 어느 정도 그 감흥이 무뎌지긴 했지만,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기쁨은 잊지 못한다. 처음 들어온 월급을 보고, 아르바이트로 몇 십만 원 용돈벌이 하던 시절보다 훨씬 큰 그 금액에 이 돈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이제 이 돈은 나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하지가 않다. 좀 더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고, 좀 더 생활이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나아가서는 돈 문제로 고민이나 걱정이 없는, 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자존심 굽히는 일이 없는 그런 삶을 바란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목표에 도달하기엔, 휴대전화 속 알람으로부터 보이는 그 숫자들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월급 뒤에 ‘0’ 하나 정도를 더 붙이면 딱 좋겠다.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그 자릿수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임원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된다고 해도 빨라야 40대일 텐데, 그때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에 활기차야 할 월급날에 오히려 일에 대한 의욕이 확 사라져 버렸다. 일단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정신 좀 차릴 겸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본다. 주변에 보이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 급한 일이 있는지 전화를 받으며 뛰어가는 사람, 문서를 뽑는지 프린터기 앞에서 인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보고서를 작성하는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사람까지 다들 제각기 일로 바빠 보인다. 나도 어서 '일해야 될까' 싶지만 한편으론 '일, 해야 될까?' 싶다.
월급만으로 이제 만족하기가 힘들다. 완전한 자유를 얻으려면 직장생활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사장이 되어서, 사람들을 고용하며 회사를 더 키워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내 일’을 해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할 것 같다.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개를 내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는 알림 창을 다시 본다.
[ ‘OO’로부터 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하지만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던 이 돈이 이제 없어져도 괜찮을까? 이제는 무뎌진 매달 들어오는 이 돈줄이 끊기면, 나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모든 것이 부담이 될 것이다. 통장에 ‘+’는 없고, ‘-’만 있을 테니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 아등바등하게 될 것이고,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수입원을 만들지 못한다면 내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어 바닥나게 될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얻는 고정적 수입, 소속감 그리고 기타 복지 혜택까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쥐고 있던 손에서 모든 것을 놓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를 새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더라면 모르겠다. 가진 것이 없었다면 쉽게 도전해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고, 이제는 쉽사리 그만둘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손에 꽉 쥐고 있는 매달 들어오는 이 월급을, 차마 내 의지로 펴서 떨쳐낼 수가 없다.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빈 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서서 뭐 하고 있어?”
지나가던 옆 부서 과장님이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곤 한마디 하신다.
“아, 잠깐 몸이 찌뿌드드해서….”
“그래? 오늘 월급날인데 일찍 들어가라구!”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직장인의 퇴사 혹은 자유는, 이렇게 살짝 고개만 내밀었다가 다시 깊숙한 곳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