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관념의 저작운동
끼니를 제 때 챙겨 먹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음식을 차리고 수저를 들고 입까지 음식물을 가지고 간 다음 목으로 넘어갈 때까지 씹기를 반복한다. 다 먹은 후엔 잔해를 치우고 뒷정리를 해야 한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수행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알약 하나로 끼니가 해결되는 세상을 원했지만 그런 세상은 왜 이리 요원한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수많은 식도락가가 존재해서일까? 나도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매번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게 귀찮을 뿐이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된다면 행복할 텐데, 인간의 생체 리듬은 고작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음식 섭취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나를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섭취한 것들이 나의 세포를 구성할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 입으로 음식물만 들어오는 건 아니다. 나의 입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숨이 들어와 나의 숨으로 치환되어 나간다. 나는 친구를 먹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고, 어쨌든 수많은 것들을 먹는다. 내게 들어온 모든 것들이 다 내가 되었을까? 원치 않은 것들 또한 내게 들어오고, 타인이 원치 않은 것들을 내 입으로 뱉는다. 입 조심하라는 말은 入과 口를 모두 조심하란 말일지도 모른다. 전자는 내게 들어오는 것을 조심하란 것일 테요, 후자는 내가 뱉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일 테다.
내게 들어온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화기관을 거쳐 필요한 것만이 남고 불필요한 나머지는 배출되었겠지. 음식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좀 더 추상적 관념의 것들, 이를테면 내가 먹은 욕들, 감당해야 했던 타인의 감정들, 불합리한 상황들, 그런 것들의 총체를 말하고 있다. 나가지 못한 찌꺼기들은 노폐물로 남아 나를 만들었다. 몇 차례의 디톡스를 통해 원치 않는 찌꺼기를 배출하였으나, 몇몇은 여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열등감이나 자괴감, 몰인정의 찌꺼기가 혈관 곳곳에 조용히 숨어있어 평상시엔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식食단보다 식式단이 더 필요한 순간이다. 내 인생의 방식은 내가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일평생의 업이나 마찬가지이다.
내 안에 독소가 많이 쌓여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입으로 독을 내뱉기도 한다. 그게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때론 멈출 수 없다. 어쩌면 너무 과하게 쌓여 내가 원치 않는 순간에도 입을 비집고 나온 걸 수도 있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돌이키기 힘들다. 스스로 성찰하며 변화할 수는 있지만, 나의 독이 타인을 향하는 순간 그건 과정이 아니라 결말이 되어버린다. 누군가에게는 나라는 인간의 종결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결말이 나버린 내가 세상에 몇 명의 유령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을지 생각하면 얕게 소름이 올라온다.
나는 현재를 살지만, 타인은 나의 과거를 곱씹는다. 이제 입을 헹구고 함부로 결말을 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때다. 입에 들어오는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나, 나가는 것은 나의 소관이니 入한 것들을 잘 다독여 出할 것들을 정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