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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Dec 30. 2022

아 올해도 얼레벌레 어영부영 살았네

한 해의 마지막 곡, 새해의 첫 곡

  작년의 마지막 날 연하장 삼아 지인들에게 적은 글을 고백하겠습니다.


  어느덧 한 해가 다 가고 있네요. 보통은 새해의 다짐을 적었지만, 어쩐지 이제는 다짐보다 성찰에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 한 해도 저라는 사람의 부족함을 여러분의 애정으로 보듬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늘 누군가를 상처 입히며 살아간다고 느끼지만, 좀처럼 그런 경솔함을 고치지 못하고 지나가네요. 사랑하며 살아야지 매일매일 되뇌고, 많은 것을 포용해야지라며 하루하루 곱씹지만, 결국에 사랑받고 감싸 안아지는 것은 나라는 것을 통감합니다. 제가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된다면, 여러분에게 받은 것들을 곱게 조각하여 세상에 돌려줄 수 있을까요? 발아래 놓인 미래가 부디 그런 나날이길 믿어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에게 연하장을 쓸까 했는데,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넘어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한 달 내내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 연하장으로 보내는 상상을 합니다. 다정도 병인양해서 한 50장쯤 적어야 할지도 몰라요. 이번 해일지, 다음 해일지 먼 미래일지 모르지만 시도해 볼래요.


  누가 보면 제가 제 사람들에게 엄청 잘 한 줄 알겠네요. 저는 2022년에도 경솔하게 살았으며, 미숙한 인간이었고, 뭐 포용은커녕 입에 욕을 달고 살았습니다. 언제쯤 저렴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며 살는지 하하. 어제까지도 야근을 하고 밥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생활을 하고 있어 연하장은 무슨 또다시 어영부영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표하지 못하고 넘어가네요. 맨날 성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삶이란! 언제까지 이렇게 대충 얼레벌레 얼렁뚱땅 어영부영 사는 걸까요?


  뭐 그렇다고 이번엔 저런 글조차 없이 넘어가는 건 아닙니다.. 쓰긴 써야죠...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감수성에 뻐렁차서 갑자기 인생을 돌아보다가 '따흑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해야 해'라며 무언가를 끄적일 걸요? 일단 지금은 올해 마지막 곡과 첫 곡을 무엇으로 하지 고민 중이에요. 작년의 마지막곡은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2022년 첫 곡은 '태연-불티'였어요. 제가 불 사주라서요. 농담입니다. 좀 치열하게 타오르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의도였어요. 평범하게 '2ne1-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으려다가 집을 나가게 될까 봐 참고 있습니다. 저는 서남향의 쓰리룸인 내 집 장만이 꿈입니다. 


  아 2023년 첫 곡은 '박소은-고강동'을 들어야 할까 봐요. '나는 아주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고강동을 통째로 다 사버릴 거야'라는 가사가 인상적인데, 정작 저는 고강동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돈이 많았으면 해요. 고작 일신의 안녕을 신경 쓰느라 죽어라 일하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내 삶을 풍부하게 하고 어쩌면 세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나, 의식주 중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이지 못하여 걱정해야 하는 게 너무 귀찮지 않나요? 하, 고대 아테네의 고위 남성 귀족으로 태어나 아고라에서 청년들에게 잔소리하고 밥이나 얻어먹어야 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의 동양인 여성으로 태어나 쉽지 않군요.


  그러고 보니 좀 치밀하고 논리적이고 꼼꼼한 삶을 살아야지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쿠야 늘 그렇듯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글을 마구 싸지르고 있네요. (항상 두서없는 아무 말을 보아주시는 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정말 여러분이 저의 삶을 아름답게 해 주시는 주역입니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들어주고 읽어준다는 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요.) 사실 제가 제일 잘 쓰는 건 일기인데, 그렇다고 일기를 공개할 수는 없어 늘 이렇게 피상적인 수준의 글을 공유하게 됩니다. 아직 내밀한 속마음을 모두에게 보여줄 용기가 없거든요.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이라면 괜찮을지 모르나, 지인들도 볼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늘 망설입니다.


  결국 2023년의 제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목표는 그저 소망으로만 남아 마음 한 켠의 짐이 되고, 또다시 언젠가를 다짐하는 해가 반복될 듯합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내가 삶에 어영부영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삶을 끌고 가는 게 목표입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목줄이 될 수 있겠으나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타인과 엉켜 살아가야 실존주의자라 할 수 있으니까요. 글쎄요, 의미 없는 질문일지 모르나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떠셨나요? 그리고 다가올 새해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려 하시나요?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이 궁금한 상태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수고로운 인생에 찬사를, 다가올 삶에 응원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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