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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Jun 15. 2024

무제

  잠든 고양이를 옆에 끼고 책을 읽다 심사가 묘하게 뒤틀려 책을 덮었다. 때마침 고양이가 그루밍을 시작하였다. 한 20분, 몸단장을 지켜보았다. 오른쪽 앞 발을 핥아 그대로 이마에 쓸어내린다. 몇 번 더 반복하면 세수가 끝난다. 나도 스스로 그루밍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발을 땅에 디뎌 화장실에 들어가 비누 거품을 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는, 이 복잡하고도 지루한 과정 없이 돌기가 난 혀와 항균성의 침만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닦아낼 수 있다면 좋을 것만 같다. 스스로의 부정을 씻어낼 수 있단 점에서 고양이는 영물이 분명하다. 나는 나의 부정을 씻기 위해 글자로써 고해성사한다. 그래봐야 다래끼와 입병조차 사라지지 않는다. 고양이는 아직도 그루밍 중이다. 분명 아까 핥았던 곳인데, 왜 또 같은 자리를 열심히 핥아대는 걸까? 완벽주의 기질인지 건망증인지 알 길이 없다.


  고양이의 체온이 사람보다 높기에 보통이라면 저 애의 숨이 훨씬 뜨거워야 하는데, 오늘은 내 숨이 더 뜨겁다. 그게 귀찮은지 얼굴을 부비면 고개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튼다. 나도 너처럼 털이 잔뜩 난 보송보송한 짐승이라면 삶이 조금은 간편했을지도 모른다. 앞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 켠 뒤 햇볕 아래 몸을 말리다 잔뜩 귀여움과 사랑을 받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 삶. 아니다, 죄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고작 열 평 남짓의 영역이 삶의 전부인 너는 정작 이곳을 벗어나 드넓은 우주에서 유영하고 싶을 수 있다. 고양이는 우주를 모른다. 그래도 우주는 고양이를 아니까, 그 자그마한 뇌에 꿈을 선물했을 수도 있다.


  너무 많은 고해성사를 들어버려 만사가 싫어진 나는 고양이를 따라 몸을 잔뜩 웅크린다. 암모나이트 모양이 되도록 동그랗게 몸을 말고 손에 고개를 괸다. 이불에서 고양이와 나의 냄새가 난다. 이대로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해야 할 일이더라? 그걸 안 한다고 내 생이 무너지던가? 아니다 그냥 평판이 조금 깎이고 말 일이다. 생계를 위한 일이라 해야 하는 건가? 아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먹고살 길은 있다. 그럼 해야 할 일이 존재하긴 하나?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냥 웅크린 채 심장 박동만을 듣다 잠들고 싶다. 나는 신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하다못해 온전한 나도 아니고 그런데 왜 자꾸 눈과 귀와 코와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로 온 세상의 고해가 비집어 들어오는가.


  그루밍할 수 없어 결국 일어나 양치를 했다. 하잘 데 없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눕자 품 안으로 고양이가 비집어 들어온다. 하여튼 고양이는 영물이 따로 없다.


  평소라면 일기장에 만년필로 휘갈길 글을, 고작 다이어리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아 이곳에 적어본다. 가장 가까이에서 타이핑하며 간편히 적어내지만, 나와 가장 먼 곳으로 데이터가 뿌려진다는 점에서 모순을 느낀다. 언제 일기장에 옮겨져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때까진 유리병 속 종이 쪽지로 이번 고해성사를 저 멀리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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