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5인의 몽골 여행기
9박 10일로 몽골에 다녀왔다. 유치환 <생명의 서>처럼 독한 회의를 구하고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기 위해 열사의 사막에 뛰어들고자 했다. 웬 걸, 끝없는 도파민만 마주하고 말았다. 보통 내 글은 정보보다 감정과 생각으로 범벅되어 있으나 이번만큼은 정보와 사실의 기록이 될 듯하다. 서로 너무 친한 여성 5인의 도파민 여행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도파민 몽골 여행, 핵심은 동행>
모르는 사람들과 갔다면 사유했을지도 모른다. 이래 봬도 내향인이기 때문이다. 창밖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보다가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 한국이라는 나라는 또 얼마나 좁은지, 그런데 그 안에서 늘 걱정을 안고 사는 내가 얼마나 우스운지 따위의 요사꾸리한 망상에 빠졌을 테다. 정작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푸르공(몽골 여행 시 많이 이용하는 차량 종류)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세상이 떠내려가라 케이팝 떼창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조졌구나’하고. 나쁜 의미의 조졌음은 아니다. 오히려 좋았다. 수수수수퍼노바를 에스파보다 더 큰 성량으로 불러재꼈다. 이 자리를 빌려 기사님과 가이드 삼촌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참고로 같이 간 내 동생은 시위장에서 홀로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성량의 보유자다. 박치라서 매번 구호를 엇박으로 소리쳤는데, 그 일대는 전부 그게 맞는 줄 알고 따라서 엇박으로 외쳤을 정도다.
오프로드와 푸르공의 합작으로 온몸에 멍이 들었지만 그걸 또 롤러코스터인 것처럼 즐기는 친구들을 보며, 쟤들이 대체 저 에너지를 어떻게 숨기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나 싶었다. 역시 대한민국 프롤레타리아의 8할은 힘숨찐(힘을 숨긴 진짜라는 뜻)이 분명하다. 물론 5인 중 두 명은 내향인, 세 명이 외향인이라 앞자리의 두 명은 기절한 듯 팔락거리며 잠만 자긴 했다. 진짜로 깊은 잠을 잔 건 아니다. 다 듣고 있다가 맘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 함께 부르고 내 얘기가 나오면 ‘엄마 안 잔다’ 스킬을 보여주었다. 사족을 달자면 난 성능 좋다는 귀마개를 낀 상태였다. 첫날 숙소에서 공지 없이 소등 시간을 앞당겨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불이 나갔을 때도 다 같이 나체로 농담 따먹기를 하였다. 근처에 있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샤워실에 가봐라. 나체의 젊은이들이 평소엔 잘 안 씻다가 여기 와서 안 하던 샤워 하니까 불이 나간다고 떠들더라’라고 속닥였다. 여하튼 어찌나 쿵작이 잘 맞았는지 모른다.
<우찌 아흑과 암카 아흑>
몽골어로 아흑은 손윗남성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발음은 걸어가다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 박았을 때의 ‘아흐…ㄱ..!’과 비슷하다. 그걸 조금 더 빨리 말하는 느낌이다. 따라 하려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냥 한국 분절음으로 아흑이라 불렀다. 즐거운 몽골 여행의 절반은 동행의 몫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가이드라고 감히 말해 본다. 자식이 다섯이라는 86년생 호랑이띠 우찌 아흑과 인생에 이렇게까지 계획이 없을 수 있나 싶은 88년생 용띠 암카 아흑덕에 더 웃긴 여행이 되었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글로 풀면 책을 출판해야 하기에 생략하겠지만, 혹시나 궁금하다면 대면 만남을 요청하시길 바란다.
푸르공이 길을 잃었을 때 암카 아흑은 ‘길 잃는 것도 일정이에요’하였고, 지독한 내향인 우찌 아흑은 여행 삼일 차쯤부터 눈빛으로 우리에게 애정을 나타내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 두 가지가 마음에 남는다. 나는 길을 잃을 때마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에 매몰되어 그 안에서 방황을 이어갔다. 길을 잃는 것까지가 삶이다. 틀어지고 삐져나가고 헤매고 돌아가는 것까지가 인생임을 깨달으면 궁극적으로는 내가 가는 모든 곳이 길이기에 어느 것도 잃지 않는다. 나의 길을 걸어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눈빛과 표정, 몸짓만으로도 따스한 애정을 전해주고 싶다. 나는 혓바닥이 너무 길다. 우찌 아흑의 우직함과 조용한 다정함이 내게도 스며들길 바란다. 그렇기에 나이 차이가 많이 안나는 두 사람이 정말로 큰 어른처럼 다가왔다. 말 그대로 ‘아흑’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들 덕에, 철딱서니들의 여행이 조금이나마 균형을 갖춘 건 아닐까?
<어디를 둘러봐도 윈도우 배경인걸>
고개만 돌리면 치유의 초원이 펼쳐져 있다. 사방이 지평선이고, 그 위에서 갈색, 흰색, 검은색, 얼룩무늬 양과 염소, 말, 소, 야크가 풀을 뜯어먹는다. 어찌나 순한지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신경도 안 쓰거나 그냥 슬쩍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연두색 물감을 쏟아 그 위에 점을 콕콕 찍으면 그냥 몽골과 다름없다.
밤이 오면 하늘에 장관이 펼쳐진다. 밀키웨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살면서 북두칠성과 전갈자리가 그렇게 거대하게 보인 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되게 작게 보였는데, 지리적 위치 때문일까? 거의 건물 한 채만 한 크기의 별자리가 우유를 쏟아둔 가운데 온 곳에 존재하였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별똥별이 마구 쏟아졌다. 소원을 빌다가 지쳐본 적이 있나? 나는 몽골에서 처음 소원을 빌다가 지쳐 보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온갖 염원을 담아 보냈다. 달이 뜨면 가로등보다 밝은 빛이 지역 전체에 내려앉았다. 전기 하나 없던 시절, 달빛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스한 위안이었을지 이제야 알았다.
열사의 사막까진 모르겠지만, 쿨토시와 모자로 무장하고 오른 고비 사막에서 사람들은 끝내준다는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내려올 땐 썰매를 탔다. 그냥 인간사가 그런 거다. 한때는 사막이 고독의 상징이었겠지만, 이제는 즐거움의 상징이 되었다.
비가 그치면 쌍무지개가 떴다. 욜링암에서 말을 타다 협곡 사이에 걸린 무지개를 보았고, 어르헝 폭포로 달려가며 쌍무지개를 보았다. 서구권에서는 무지개 끝에 보물이 묻혀있다고 했는데, 무지개의 끝을 본 건 처음이었다. 땅의 끝과 끝에 무지개가 걸려있으면, 누구라도 무지개 끝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나는 무지개 끝을 파보는 대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 자랑하였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의 1할만큼도 못 미칠 테지만, 그래도 나의 감동을 모두에게 나누고 싶었다. 우찌아흑과 암카아흑까지, 총 7명이 광활한 도화지 속에서 7개의 쉼표로 자리한 여행이었다. 물론 아흑들에겐 일이었겠지만 이미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져서 도저히 빼고 쓸 수 없을 뿐이다.
<그 외의 조각들>
하나, 이번 여행에는 비건 친구가 함께였다. 여행사와 가이드를 잘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캐리어에 비건 음식 넣을 자리도 필요하다.
둘, 몽골은 동성혼이 가능한 국가이다.
셋, 이번 여행은 글보다 영상으로 기록하는 게 더 어울리지만 늘 하던 버릇이 있어 글로 남길 수밖에 없다.
넷, 암카삼촌이 조카들에게 잘생긴 남자 보여준다고 시합이 막 끝나 헐벗고 있는 몽골 씨름 선수와 사진을 찍어주었다. 살면서 그렇게 쑥스러웠던 것도 몇 없었는데… 그리고 그분이 씨름 대회 우승하셨다고 한다. 축하드립니다. 저희는 유명인과 사진을 남겼군요.
다섯, 한 번 친해지면 온 마음을 내어주는 내 동생은 더 이상 가이드 있는 여행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한 3일은 오열하더라. 그래서 내년에 또 만나러 가기로 하였다. 그때에도 이번과 같은 멤버로, 홉스골을 구경하였으면 한다.
여섯,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지만, 기력이 부족해 이만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