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은 한 달간 이사를 하였다. 이전보다 집은 커졌지만 침실만큼은 좀 더 아늑해졌다. 침대 뒤로 자리를 빼앗긴 책장에 오로라 조명을 올려두고 하루종일 켜둔다. 원래도 간접등만 이용하나, 이제는 별을 흉내 낸 레이저가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정말 우주 느낌이라도 내려는 듯 중간중간 별똥별도 떨어진다. 내 방에는 매일같이 유성우가 내린다.
몽골에서 참 많은 별똥별을 보았다. 볼 때마다 소원을 빌었지만 방 안에서 소원을 빌어본 적이 없다. 오로라 조명을 산 게 벌써 3-4년은 된 것 같은데, 이걸 진짜 조명으로 사용한 적도 처음이다. 내 고양이는 레이저가 유리창에 튕길 때, 마치 티비를 보듯 멍하니 창을 바라본다. 겁쟁이 고양이는 집이 넓어져도 침실 밖에서 놀지 않는다. 바보 같으니. 정남향의 햇살을 듬뿍 만끽할 것이지. 조금이나마 익숙해지라고 거실 창틀에 간식을 올려둔다. 내가 보지 않을 때 몰래 나가 간식만 먹고 돌아온다.
나도 비슷하다. 날이 좋아도 침대에 누워 뜨개질이나 하고, 책이나 읽고, 낮잠이나 잔다. 조명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웅웅 울린다. 벌의 날갯짓 같기도 하다. 옆자리의 아이는 머리만 대면 잠이 든다. 깨우지 않으려 핸드폰도 보지 않고 조명을 응시한다. 레이저가 별똥별을 흉내 내며 떨어지니 문득 소원을 빌고 싶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이 영원하진 않아도 내 마음속에 그림처럼 전시되길 바랐다. 곤히 잠든 이가 꿈으로조차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 등 뒤의 온기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따뜻하였다. 수족냉증인 나와 달리 금방 손이 따뜻해지는 사람들, 언제나 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고양이들, 바스락거리는 가볍지만 두꺼운 이불. 다정을 목표로 삼은 인간은 자신이 나눈 다정을 채우려 따뜻한 것들만 찾나 보다. 레이저가 만든 가짜 유성우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조잡한 게 뭐 어떻고, 가짜인 게 뭐 어떻냔 말인가? 늘 가짜 같은 삶이라면 만들어진 온기라도 진짜가 될 수 있다.
오늘은 실업급여 1차 출석일이었다. 내 삶은 여전히 비틀거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는 요상꾸리한 무언가이다. 어제는 돈 걱정을 하면서도 인형 뽑기에 돈을 쓰고 손바닥 반만 한 유령 인형을 뽑아 신난 채로 하루를 보냈다. 잠실역에 쭈그려 앉아 거의 십 년 만에 인형 뽑기에 열중하고 있으니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가방에 달고 온 유령 인형을 보며 ’네가 시간이 많은가 보구나‘라고 혀를 차셨지만, 무용한 것들로 쌓아 올린 허점투성이의 성을 유용하게 재건축하려면, 리모델링보다 철거가 먼저일지도 모른다. 철거는 곧 붕괴요, 자아의 상실이 될 텐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효용에 미친 세상에서 요상꾸리한 것들로 만들어낸 가짜 같은 나의 성, 이곳에서 무용함은 유용함이 되고, 진짜가 되고, 충족감을 만들어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전까진 유유자적한 삶을 이상향으로 두었다. 그럼 나는 좀 전근대적인 인간인가 보다. 아니 유령일까? 뭐든 하고 싶은 것을 좇는 유령으로 세상을 둥둥 배회하겠다. 오랜만에 쓴 글이 이토록 무용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니, 이건 좀 아닌 듯 하지만, 뭐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 일단은 쓴다. 쓰고 또 쓴다. 어차피 내가 뱉는 모든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질 파편화된 문자에 불과하니까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간다.
길게 핑계를 늘어놓았으나 그냥 이 공간이 그리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