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개를 무서워했다. 그 시절엔 오프리스에 짖으며 쫓아오는 개들이 꽤 많아서 그랬던가? 솔직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개에게 쫓긴 경험도 있긴 한데, 그전부터 개를 무서워했으니 아마 그게 이유는 아닐 테다.
언젠가 엄마가 친구 집에 놀러 가면서 “세경(가칭) 이모는 엄청 큰 개를 키워”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걸 ’게‘로 알아들었다. 될성부른 회의주의자였던 내가 몇 번이고 “게? 멍멍개 말고, 꽃게, 양옆으로 걷는 그 꽃게, 바다 사는 게 맞아?”라고 되물어 봤다. 엄마는 대충 ’어, 그 게‘라고 대답했다. 아마 진실을 말하면 귀찮아지리라 여긴 듯하다.
막상 도착했을 때 현관부터 컹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에는 (내 기억 속에서나마) 사나운 달마시안 세 마리가 있었다. 어린 날의 배신감이란!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며 집에 돌아가자고 주장했고, 때를 쓴 대가로 집에 가서 정말 많이 혼났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나를 속인 건 분명 엄마였는데, 왜 내가 혼나야 한단 말인가?
지금은 동물이라면 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달마시안 세 마리를 키우던 세경 이모는 이제 대형견 네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산다. 이모는 매우 잘 살던 사람이라 온 집이 명품이었다. 재미있는 건, 드레스룸의 4할가량이 짝퉁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잘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놓고 짝퉁을 섞어 입어도 사람들은 그게 진품인 줄 알았다. 성인이 된 내가 오랜만에 이모 집에 방문했을 때, 이모는 내게 가방 세 개와 신발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전부 짝퉁이었다. 현금으로 오만 원의 용돈조차 주지 않는 깐깐한 사람이 사실상 남인 내게 진퉁을 줄 리 없다. 애석하게도 내가 가난한 인문학도라는 것을 온 세상이 안다. 만일 그게 진퉁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들고 다니면 짭 같아 보였을 거다.
잠이 설풋 들 때쯤, 갑자기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내 인생이 거짓 범벅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짓 인연, 거짓 감정, 거짓 생각, 거짓 관계, 내게 진짜는 무엇인가? 우울함이나 침전 같은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타인과 세상에 늘 온전히 진실된 적 있던가? 세상은 대개 나를 실망시키고 속여오지 않았나?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4년 전 일기 속, 평생 날 지탱할 사람들이라고 적어 두었던 친구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와는 삶의 결이 달라져버렸다. 관계에 빛이 조금 바래었다. 그들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 친한 사람들이 생겼을 뿐이다. 20대 초반까지 우울할 때마다 읽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은 내 책장에서 사라져 엄마의 창고로 들어간 지 오래이다. 좋아했던 것들의 많은 수가 무의미해졌다. 또 다른 것들이 빈자리를 채우겠지만 예전 같은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겁쟁이가 된다. 쉽게 마음을 주었다가 깊게 상처받는다는 사실이 나이테만큼 쌓여 속살거린다.
나의 고양이들은 그 세계의 반경이 작은 탓에, 그 조그마한 머리와 가슴으로 날 대하긴 하였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진심은, 털동물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진심과 진실과 진짜를 원하는데, 대부분의 삶은 거짓과 모순과 짝퉁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공허하기도 하고, 보잘 것 없어서 오히려 우습기도 하고, 실존주의자의 삶이란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 많은 잡념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이게 고독인가 싶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자신 또한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인간을 참 고독하게 만든다. 가끔은 그 고독에 온 마음이 잠식되다가, 또 어떨 땐 모두가 고독하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지나가는 인연, 지나가는 마음, 지나가는 생각이면 뭐 어떠한가? 순간의 내가 그것들을 진심으로 여겼으면 됐지. 나는 원래도 큐빅과 보석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걸 구분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 눈에 예쁘면 그걸로 족하다. 오늘 밤도 어떤 거짓이 나와 공존하고 있는지 그 양과 깊이를 알 수 없지만, 구분할 요령도 역량도 없다. 잔뜩 경계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시나브로 진심을 여는 것이다. 어렵게 내비친 진심이 어느 날은 변색될 수 있으나, 최대한 자주 광을 내어 반짝이게 만들자. 어차피 견뎌야 하는 인생이라면 사랑하며 사는 게 더 근사하지 않나? 깨진 유리조각이 파도에 쓸려 보석 같아지듯, 마음도 거짓에 상처받고 부딪힌 만큼 예쁘게 해변을 장식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