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프란시스코
5월 2일 (금)
12시간의 장거리 비행으로 인해 넉다운되었지만 오랜만의 해외여행으로 가족들은 들떠 있었다. 입국 심사에서 혹시나 짧은 영어 때문에 통과 못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긴장감에 입국 심사관에게 첫 질문에 입술이 부들거리며 여행 목적이 tour, sightseeing이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며칠 이불킥 해야 했다. 어려운 영어도 아니었지만 무뚝뚝하게 내받는 입국 심사관 때문에 긴장했던 탓이다. 다행히 통과해서 가족들의 약간의 격려를 받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이 어디 가겠나. 앞으로의 미국 여행이 살짝 걱정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인상은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영화에서 봤던 거대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가 인천공항에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낡은 시설의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약간 낯설었다. 피켓을 들고 있던 인상 좋으신 가이드를 만났고, 다른 팀보다 일찍 짐을 받은 탓에 조금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 앞에 스타벅스가 있어 반가웠는데 첫 커피 주문을 해볼까 했지만 얼마나 오래 기다릴지 몰라서 그냥 기다렸다.
일행들이 모두 합류했고, 첫 여행지는 피셔맨즈 워프라는 곳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시계탑의 흰색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바다 근처여서 그런지 바람이 세서 머리를 다 헝클어 놓았고, 미국 국기가 신나게 나부꼈다. 탁 트인 광장과 바다, 초록색 트램, 주변의 고층 빌딩들이 조화를 이뤄서 근사한 풍경이었다. 날씨는 다행히 화창해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신나게 사직을 찍어댔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지 많이 졸려했고, 다른 일행들은 선택관광으로 유람선을 타기로 해서 우리는 사진 몇 장 찍은 후에 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아이들은 버스에 남겨서 자게 두고 와이프와 주변 관광을 하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샌프란시스코의 Traders Joe's라는 마켓이야기를 전부터 했던 것 같은데 내가 흘려들었는지 잘 기억 못 해서 한소리를 들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각지의 마트를 방문해서 지역 특산물이라던지 향신료, 간식 거리를 사는 것을 좋아하는 와이프가 이것을 놓칠 리 없는데 아마도 사전 조사를 했었나 보다. 가는 길에 라라랜드 영화에서 나올 법한 예쁜 샌프란시스코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차에서 백발의 노인분이 바라보고 있어서 왜 그러나 했었는데 우리가 배경으로 찍은 건물의 차고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머쓱했었다.
Traders Joe 마켓은 체인점인데 여러 식료품과 더불어 기념품들을 값싸게 팔고 있었다. 살인적인 샌프란시스코 물가에 비해 굉장히 저렴했고,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지가 몽둥이만 했고, 피망은 굉장히 컸지만 수박은 작은 피구공만 했고, 사과의 크기는 테니스공 크기 정도로 작았다. 색깔이 루비보석보다 빨간 사과 한 봉지를 사고, 커피콩 초코볼 등 과자류를 샀다. 와이프는 선물용으로 질 좋지만 값싼 에코백 - 아마도 장바구니 대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 을 여러 개 담았다.
버스로 돌아오다가 운전석에 아무도 없이 움직이는 웨이모 차를 발견해서 놀랐다. 레이다 방식으로 주변을 인지하고 무인 운행된다고 들었던 웨이모를 실제로 보게 되어서 신기했다. 최첨단 도시라는 느낌보다는 약간 영화에서나 보는 예쁜 도시라고 생각했던 샌프란시스코가 달리 보였다. 그래도 여행 가기 전에 보았던 라라랜드 영향 탓인지 건물이라던지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멀리서 미아나 세바스찬이 갑자기 걸어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하이라이트인 금문교를 보기 위해 버스는 또 바삐 움직였다. 가이드의 금문교 역사를 들으며 과거의 고난도 공사를 했을 기술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짤막한 다큐먼터리를 본 적이 있어서 금문교에 대해서 잘 알았지만 골든 게이트라는 이름의 유래라던지 샌프란시스코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스페인 개척자들의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금문교에 도착에서 가이드의 인솔을 따라 포토스폿을 바로 이동해서 가족사진을 비롯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인생샷을 찍 위해 관광객들이 은근한 자리 신경전을 피해서 금문교를 열심히 휴대폰 화면에 담았다. 약간 오렌지 빛을 띠는 붉은색 금문교는 너무 영상이나 사진으로 봐서 그런지 뭔가 가슴에 확 와닿는 건 없었지만 정말 미국에 왔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행이 다 끝나고 와이프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금문교를 바라봤을 때 살짝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괜히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문교에서 여러 장의 인생샷을 찍고 서울집이라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기내식만 먹다가 김치찌개로 속풀이를 하나 반가웠다. 김치찌개 맛이 좋아서 가족들이 맛있게 식사해서 다행이었다. 식사 후 오래 참았던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오면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의 이정후와 식당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같이 찍은 사진도 걸려 있는 것을 봤다.
숙소는 산호세 근처의 호텔이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원래 묵으려고 했던 호텔이 아니어서 숙소비가 비싸다고 했는데 호텔 로비 옆 식당에서 파티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시끌벅적했다. 영화에서처럼 미국은 파티를 즐긴다더니 아시아인 50여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쳐서 쳐다볼만한데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들만의 토크에 빠져있어서 신기했다.
그다음 일정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어서 5시 기상에 조식 후 6시 출발이어서 일찍 잠들어야 했는데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아이들을 비롯한 와이프와 나는 거의 뜬눈으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트레이더스 조에서 사 왔던 사과가 맛있어서 그걸 깨물어 먹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대한 나무들과 바위들을 상상하면서 약간이나마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