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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을 떠나다

4. 라스베이거스 2일 차

by 행복고래

5월 5일 (월)


라스베이거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자유일정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약간 늦잠을 자고 M&Ms 스토어, 코카콜라 스토어를 돌아본 후 스피어 공연을 감상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하이롤러라는 대관람차도 탈 생각이었다. 그렇게 자유 일정을 꽉꽉 채워서 우리 가족만의 스케줄 대로 움직일 생각이었자만 여행이란 게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던 둘째가 밤이 되자 열이 더 심해진 것이다. 애들 엄마를 포함해 가족 모두 걱정과 병간호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했다. 안 그래도 어젯밤 늦게 벨라지오 분수쇼를 보고 호텔 방에 들어와서 인지 다들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나마 선견지명이었던지 다행히 오전 일정으로 있던 후버댐 일정은 신청하지 않았던 터라 그냥 숙소에서 늦잠 자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하고 밤늦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을 자고 눈을 뜨니 오후 2시였다.


멀리까지 와서 여행일정을 망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가족의 건강이 최우선이다는 생각에 둘째 아이의 체온을 체크했는데 여전히 심상치 않았다. 일단 가져온 부루펜 해열제도 다 떨어져 가는데 식사도 못하고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빈 속에 약을 먹을 수는 없어서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가서 가족들이 먹을 참치 샌드위치와 커피, 물을 사 왔다. 다행히 식사시간이 아닌 애매한 월요일 오후 시간대여서 줄이 길지 않았다. 그렇지만 샌드위치 2개와 커피 2잔이 한화로 무려 8만 원이 넘는 금액이 청구되어서 다시금 미국의 비싼 물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흐리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는데 설마 사막에 비가 내릴까 했는데 정말 비가 왔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어보니 라스베이거스 여행 중에 비가 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했다. 하필 우리 여행에 비가 오다니 참 운수 나쁜 날이 아닌가. 그래도 다행히 둘째 아이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루펜 말고 타이레놀을 먹기 시작했더니 열이 잡히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져온 약이 다 떨어질 걸 걱정해서 가이드에게 전화로 감기약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구할 수는 있지만 아이가 먹기에 미국 약이 잘 안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가이드를 포함해 패키지여행 일행들이 후버댐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는지 우리 이야기가 전달이 되어서 일행 중에 한 분이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흔쾌히 나눠 주신다고 했다. 해외에 나가면 같은 동향사람들끼리 뭉친다더니 먼 타국에서 기대하지 못한 한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약간 낯을 가려서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니 굉장히 고맙고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몇 분이 감기약을 나눠주셔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약 부족함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5시 스피어 공연을 예약해 놔서 출발하긴 해야 할 텐데 아이들을 이 빗속을 뚫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비가 우산을 못 들 정도는 아니었고, 스피어까지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여서 30분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도시 자체가 비가 많이 올 때를 대비해서 설계되진 않아서인지 배수 시설이 미흡해서 곳곳에 물 웅덩이가 많았다. 덕분에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었다.


스피어는 멀리서 봤을 때는 호텔 바로 옆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실제 가보니 굉장히 커서 가까운 것처럼 보인 거였다.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입구를 찾아 빙 둘러서 가야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스피어 구조물은 생각보다 굉장히 컸고 화려해서 놀랐다. 거의 아파트 15층 높이였던 것 같았다. 티켓팅을 마치고 입구에서도 에스컬레이터를 한참 타고 올라가야 관람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피어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LED 불빛 때문에 마치 미래의 건축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건물의 층고도 높아서 거대한 우주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내부에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을 한 로봇도 전시되어 있었고 우주선 안에서 우주 밖을 바라보는 듯한 LED 영상들이 쉼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내 관람석에 안내되어 들어갔는데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관람석이 굉장히 많고 편안했다. 야구장보다 관람석이 많았던 것 같고, 앞뒤 위아래 간격도 넓어서 편안하게 관람이 가능할 것 같았다.


공연 내용은 '지구에서 온 편지'라는 영상이었다. 아이들이 볼 수 있을 만한 전체 이용관람가를 고르다 보니 별다른 선택권은 없었지만 대자연, 우주,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심오한 내용이었다. 스피어 천장 스크린에 16K 영상이 펼쳐지니 시야각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 만큼 광활했다. 상하좌우 모든 곳에서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몰입감이 굉장했다. 관람객이 아니라 마치 내가 영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곤충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는 너무 실감 나서 소름이 돋았고 풍등이 하늘로 올라갈 때 여러 대자연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와이프는 너무 생생해서 상어가 옆에서 지나가는 것 같아서 약간 무서웠다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아서 멀미도 조금 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컨디션이 안 좋긴 했지만 생생한 화면이 신기했던지 재밌게 봤다고 했다. 영상 시간이 40분 정도 아쉽게 금방 끝났다. 아직은 이 방대한 화면을 채울만한 콘텐츠가 많이 없다고 하니 다양한 영상들이 나올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오늘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던 게 기억이 나서 부랴부랴 주변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다행히 호텔 안에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펍을 겸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레스토랑 안에는 식사 시간이 애매해서인지 다들 식사보다는 맥주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식당답게 늦게까지 운행해서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했다. 구글맵에서 추천리뷰로 확인했던 스테이크와 고르곤졸라 파스타, 자이언트 미트볼 파스타, 쉬림프 라비올리를 시켰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주문이 잘 안 될까 걱정했지만 다 한 번에 알아들어서 신기했다. 식사는 미국 스타일 대로 양이 엄청 많고 맛도 좋아서 네 식구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스테이크가 굉장히 부드러워서 만족스러웠다. 계속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니며 식사하다가 메뉴를 직접 골라서 식사를 하니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아이들도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었다. 팁을 영수증에 기재하는 법을 미리 공부해 간 탓에 어렵지 않게 계산을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사 후 시간이 9시가 다 되어 갔는데 일정이 이렇게 끝나서 아쉬웠다. 그런데 웬걸 원래는 M&Ms 스토어가 11시 30분까지 운행된다고 했다. 역시 라스베이거스 다뤘다. 걸어서 가기에는 비도 오고 멀어서 lift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우버와 비슷한 업체인데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우버보다 lift가 더 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앱을 설치해 뒀는데 이렇게 써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한국에서 카카오 택시도 잘 사용 안 해봤는데 앱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클릭하고 조회하니 요금대별로 가까운 차량이 매칭되었다. 비가 와서 승차 위치를 찾는데 애를 먹었지만 편하게 M&Ms 스토어에 갈 수 있었다.


M&Ms 스토어는 아이들의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했고 다양한 종류의 굿즈들을 팔고 있었다. 몇 개만 골라도 주머니가 다 털릴 만큼 가격은 사악했지만 여러 인형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포즈의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도 오래간만에 즐거워하며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굿즈 중에 커스텀하게 초콜릿 볼에 이름을 새길 수도 있고 원하는 맛을 골라서 포장해서 담을 수도 있는 게 있어서 몇 개 선택해서 사 왔다. 그런데 아뿔싸, 매장을 나와서 코카콜라 매장을 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는지 10시가 넘어서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밖에서 유리창으로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lift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밤이 늦어서 녹초가 되었고,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까지 왔는데 라스베이거스의 하이라이트인 카지노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11시쯤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기심 반, 기대 반 1층 로비 슬롯머신으로 향했다. 와이프는 신맞고 게임으로 다져진 게임 실력을 발휘해 잭팟을 터트려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슬롯머신의 바를 몇 번 당기니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뱅글뱅글 계기판이 돌아가고 금방이라도 잭팟이 될 것 같았지만 야속하게 숫자와 그림이 어긋나서 크레디트는 자꾸만 줄어갔다. 희망고문처럼 5번의 1번 정도 줄이 맞아서 크레디트를 벌 수 있었다.


그러다 약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떤 백발의 백인 아저씨가 마치 슬롯머신을 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처럼 머신을 옮기라고 해서 카지노 매니저인가 보다 생각하고 옮겼는데 약간 느낌이 싸해서 멈칫거렸더니 그 아저씨가 베팅 금액을 최대로 해서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서 돈을 한방에 탕진시켰다. 그러더니 뻔뻔하게 돈을 더 넣으라고 해서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하더니 한숨을 내쉬고 가더니 다른 사람한테 가서 (초짜로 보이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식사 마치고 오는 길에 재밌어 보여서 눈여겨봤던 주사위 게임을 발견해서 30분 정도 집중해서 했더니 웬걸 25달러 정도 따게 되었다. 규칙이 화면에 깨알같이 쓰여있긴 했지만 너무 간단히 적혀있어서 잘 이해가 안 가서 마구잡이로 눌렀는데 초심자의 행운으로 돈을 따게 되었다. 더 하고 싶었지만 규칙도 잘 모르고 1시간을 넘기니 피로감이 몰려와서 방으로 돌아왔다.


오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 일정을 날릴 것 같았지만 결국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지금까지 경험 안 해봤던 것까지 다해본 날이어서인지 뿌듯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날이었다. 내일은 패키지여행 일정대로 네바다주를 벗어나서 아침에 유타주로 가서 이동할 예정이라서 서둘러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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