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LA - 유니버설 스튜디오
5월 8일 (목)
라플린에서 LA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현지 시각 6시 20분쯤에 버스에 올랐다. 5시간은 계속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는데 여행 내내 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해지긴 했지만 점점 피곤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제 그랜드캐년 일정 때문에 많이 걸어서 더 피곤한 것도 있었다. 버스에서 거의 비몽사몽 잠을 자다 보니 유니버설 스트디오에 도착했다. 어제 선선한 그랜드캐년에 있다가 LA로 오니 뜨거운 태양에 거의 녹아드는 것 같았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지 않으면 밖에 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들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오니 갑자기 기운을 차렸는데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혹시나 건강은 상하진 않을까 계속 노심초사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들어가기 전에 현지 김밥집에서 단체로 주문한 김밥을 하나씩 들고 입장했다. 일정이 워낙 빠듯하고 사람이 많다 보니 가이드 아저씨가 최선의 동선으로 재밌는 탈것 위주로 안내해 주셨다. 날씨는 정말 무더워서 처음엔 선글라스만 꼈는데 나중에는 모자를 쓰지 않으면 머리가 뜨거워져서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영화 제작 세트장 버스투어였다. 준비해 온 김밥을 먹으며 양 옆으로 영화세트장을 구경했다. 버스에 있는 티브이에서 안내가이드가 열심히 영어로 설명해 주는데 김밥 먹느라 양옆을 보느라 설명은 잘 들어오진 않았다. 킹콩이나 영화 사이코, 죠스 같은 아는 영화가 나왔을 때 갑자기 중간중간에 뭔가가 튀어나와서 놀라게 했고, 옆에 앉았던 남자 꼬맹이가 울음을 터뜨려서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비행기 추락 세트장을 지날 때는 실제 비행기보다 1/3 정도 비율로 축소된 크기의 세트였는데 생각보다 정교해서 인상 깊었다. 사실 세트장이 재밌었다기보다는 동심을 잃지 않은 아이들의 놀라고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훔쳐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쥐라기공원의 놀이기구를 탔다. 코스가 제법 길고, 중간중간 스릴 있는 낙하도 있어서 재밌게 탔다. 공룡들은 약간 만든 지 오래된 로봇 같아서 실감 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원하게 물놀이 썰매를 타는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세 번째 코스는 워터월드라는 야외 공연이었는데 이게 어른들이 보기에는 재밌었다. 초반에 관객에게 물을 뿌리며 시원하게 시작했는데 몸으로 치고 빠지는 약간 할리우드 액션이 가미된 코믹 액션 쇼였다. 중간중간에 물 폭탄이 터지고 불꽃이 난무하고 정신없었지만 악당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멋진 주인공 남녀가 시종일관 볼거리를 제공했다. 날씨가 더운데도 높은 난간에 오르고 악당 들고 주먹질하고 넘어지고, 물에 빠지기도 하였다. 악당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온몸에 불이 나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 등 고난도 액션을 많이 보여줘서 흥미진진하고 호쾌한 느낌이었다. 동영상을 많이 찍어두었는데 나중에 돌려보면서 그때 느낌을 되살려봐야겠다.
네 번째 코스는 해리포터 성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거였는데 해리포터 영화에서 나오는 빗자루 타고 경기하는 체험을 하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 딸은 약간 무서워할 것 같고, 와이프도 멀미가 날 것 같다고 해서 첫째와 나만 타기로 했다. 대기 줄이 많이 길었지만 해리포터 성의 내부의 장식들이 꽤 잘 꾸며놔서 눈요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일본 도쿄 여행 때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따로 갔던 터라 비슷한 구성이 많아서 그렇게 놀랍거나 재밌지는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기구를 탔는데 타자마자 갑자기 1분 동안 정지해 있는 게 아닌가. 미국까지 와서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식은땀이 났는데 안내방송도 없고 어두컴컴한 곳에 멈춰서 있으려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놀이기구는 다시 정상 작동해서 신나게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몇 바퀴를 돌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큰 딸은 재미있는지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즐거워했고 나는 잔뜩 긴장해서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었다. 매번 놀이기구는 그만 타야지 하는데 아이 혼자 못 타게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음 코스는 심슨가족 집에 가서 놀이기구 타는 거였는데 우리는 심슨보다는 닌텐도 슈퍼마리오 스튜디오에 가고 싶어서 일행과 떨어져 따로 움직였다. 둘째 아이가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어서 - 안 가면 오사카 여행을 한번 더해야 할 것 같아서 - 슈퍼마리오 테마파크로 이동했다. 역시 가이드가 일러준 동선과는 한참 떨어진 곳이라 많이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알록달록 슈퍼마리오의 건물들과 동상들을 보니 마치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단위 여행객들로 굉장히 인파가 분비기 시작했는데 마리오카트 놀이기구를 타는 대기 줄은 그다지 길지 않은 것 같아서 일단 줄을 섰다. 그런데 웬걸, 입구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대기 줄이 꼬불꼬불 얽혀있었다. 40분 넘게 기다려서 드디어 탑승한 마리오카트는 가상 VR 게임으로 안경이 달린 마리오 모자를 쓰고 움직이는 실제 카트를 타고 이동하며 게임을 하는 거였다. 열심히 운전하고 버튼을 정신없게 누르니 스코어가 올라갔는데 사실 어떤 규칙으로 진행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재밌다며 즐거워했고 너무 빨리 끝난다며 아쉬워했다.
앗... 그런데 마리오카트를 타고 나오니 리무진버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기프트샵에서 살 것도 많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로 뛰더라도 버스에 돌아가기까진 늦을 것 같아서 가이드에게 15분 정도 늦을 거라고 연락드리고 출구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둘째 아이 티셔츠 한 장 냅다 구매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여행 중에 이렇게 많이 늦었던 것은 처음이라서 일행들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다들 아이 동반으로 유일하게 온 가족이라서 그런지 이해해 주어서 고마웠다.
버스 좌석에 앉으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구경 못해서 아쉬웠다. 그동안 에버랜드, 롯데월드, 도쿄 디즈니랜드 등 웬만한 놀이공원 다 가봤지만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닌 것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재밌었을까. 줄 서느라 다리도 아팠고 온갖 외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 있다가 왔다 보니 와이프와 나는 지친 얼굴을 하고 버스에서 계속 멍 때리고 있었다.
사실 놀이기구 많이 타는 것도 좋지만 여러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재밌는 볼거리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기념품 샵에서 다양한 기념품도 구경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최선의 동선으로 이동해서 놀이기구는 많이 탄 편이라서 어른들 입장에서는 괜찮은 구경이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역시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신나고 즐거웠잖아, 그걸로 되었지 뭐 하면서 애써 즐거웠노라 스스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