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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 grrgak Apr 11. 2024

Eternal Sunshine

#020 Editor. 성산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24) - 미셸 공드리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또 과몰입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고 말하는. 겨울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 종종 보곤 했는데, 사실 언제 봐도 좋은 영화이다. 이 글은 이 영화가 왜 좋았는지에 대한 글이다.


줄거리의 전체적인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한 번. 줄거리를 알고 나서 한 번. 떡밥을 찾아가면서 한 번. 볼수록 매력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이 영화를 5번은 본 것 같은데, 며칠 전 보면서 또 울어버리고 말았다.-



서사에 대해서

처음 영화를 보면 아 두 남녀가 만나고 쟤네 곧 사귀겠구나~ 한다. 사실 그게 프롤로그였다지. 그 둘은 사실 헤어진 연인이며, 서로의 기억을 지운 상태로 또 만났다.


프롤로그 : 기억을 지운 후 첫 만남

열차에서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냐며 말을 걸어온 클레멘타인. 알고 보니 자주 가던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머리색을 자주 바꿔서 자신을 기억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사실 이것도 떡밥일 줄은.. 서로가 서로를 지운 상태이기에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는 걸 알고 분노한 조엘이 기억을 지우려 한다.


 : 조엘의 기억 속 연인 시절 이야기 (기억 제거 과정)


 : 클레멘타인을 지우기 싫어 피해 다니지만 결국 기억 제거 시술이 끝나고


돌아가서 프롤로그.

 : 서로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


오타쿠는 이런 수미상관 전개에 매우 취약하다.




색깔에 대해서

클레멘타인이 자신은 머리색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여자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그들의 진짜 첫 만남에서 클레멘타인은 빨간색 후드에 초록색 머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귀면서 '후드색 같은 빨간 머리'. 헤어지고 나서는 파란색. 클레멘타인이 쓰는 염색약 회사의 작명 센스가 끝내주는데. '그린 레볼루션. 레드 메너스. 블루 루인.' 서사를 색으로 표현했다. 지루했던 조엘의 인생을 뒤바꿔줄 것만 같았던 클레멘타인. 서로에게 이끌린 순간과 이 사랑이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상처를 주고 떠나지만.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만남을 시작했다.


“이런 이름을 붙이는 사람도 따로 있나?”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죠.”



그들은 굳이 이런 만남을 가졌고. 사랑을 했다. 또 굳이 서로를 찾는다.





미장센에 대해서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건 바로 미장센이다.

기억을 지우는 기술은 먼저 대상에 대한 기억이 담긴 물건을 도구로 '기억의 지도'를 만든다. 생성된 기억의 지도에서 대상을 삭제한다.


나는 특히 기억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좋았다. 기억은 자기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진행되고 저장된다.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블러로 보인다. 앞이 존재하지 않은 기억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들은 얼굴이 없거나 뒷모습만 보이고.

기억이 섞이면서 침대가 해변에 가 있질 않나. 차 안에 모래가 턱 끝까지 차오르질 않나.

기억 제거를 피하기 위해 잊을 수 없는 어렸을 적 창피한 기억으로 클레멘타인을 숨긴다.


이런 연출이 너무 재치 있다. 마치 데페이즈망 미술 작품 같달까.




'이번엔 남는 게 어때?'

'문밖으로 나왔는걸. 남은 기억은 없어'

'다시 와서 최소한 작별 인사라도 해. 마치 그때도 인사했던 것처럼'

'안녕 조엘'

'몬톡에서 만나'


그래서 무엇이 남았는지?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다시 만나도 상처를 주고, 받을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10번 넘게 한다고 되어있다. 계속 지우고 만나고 또 지우고 하는 것이다.-

망각은 복이며, 인간은 자신이 실수한 것까지 잊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한다면. 실수와 상처의 반복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바보같은 짓이 아닌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화려하지 않으며, 멋지지도 않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성격에 모난 부분이 하나씩 있다. 헤어질 때쯤엔 맨날 싸웠다. 말도 참 밉게 한다.



그러나 기꺼이 “Okay.”를 말한다.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할까. 그렇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을 선택하겠지. 그저 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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