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 나는 ‘밥 차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라면 하나 끓일 줄 몰랐다거나, 요리에 서툴다는 뜻이 아니라
굳이 매 끼니를 정성껏 챙기지 않아도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의 나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시켜 먹었고,
일이 바쁘면 그냥 건너뛰기도 했어요.
식사보다 내가 우선이었던 삶이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하루가 시작된다
이제는 눈을 뜨기도 전에
작은 손이 내 어깨를 흔들어요.
“엄마, 밥 줘~”
그 한마디에 나는 이불을 밀쳐내고
냉장고를 열어요.
전날 남은 반찬을 꺼내고,
계란을 굽고,
국을 데우고,
작은 밥그릇에 한 수저씩 정성스럽게 담아요.
예전 같았으면
피곤하다며 미룰 아침인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나는 요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살고’ 있었구나.
잘 먹이기 위해 장을 보고,
먹기 좋게 자르고,
아이의 입맛을 기억하며 맛을 조절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번거로움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사랑의 모양이었어요.
엄마가 되어 처음으로,
‘내 손으로 밥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그건 의무가 아니라
정체성이었어요.
그럼에도 매일 밥을 차린다
물론 언제나 마음이 따뜻한 건 아니에요.
반찬 투정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이걸 몇 시간 동안 준비했는데…”
속상한 날도 있었어요.
가끔은
아무도 밥을 차려주지 않는 내 현실이 서글퍼서
찬밥을 먹으며 눈물이 핑 돌던 날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또다시 냄비 뚜껑을 열고,
밥을 안치고,
국을 끓여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또 다시 ‘엄마의 손’이 되어 있어요.
식탁에 마주 앉은 아이가
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세상이 다 고마워져요.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순간이 나를 위로해줘요.
나는 밥을 차리지만,
사실은 매일 사랑을 담고 있었구나.
이젠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엄마가 된다는 건
거창한 뭔가를 해내는 일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밥을 차리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요.
그 밥 한 끼에
나의 시간, 손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어느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차리고
아이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먹겠죠.
그 평범한 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