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마트에서 계산을 하며 점원이 건네는 말.
“엄마, 봉투 필요하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처음엔 어색했어요.
내가 아닌 것 같고,
내 이름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요.
누군가 ‘엄마’라고 부르면
이젠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내가 있어요.
익숙해졌다는 건,
어쩌면 받아들였다는 뜻이겠죠.
아이를 낳고부터
내 이름은 점점 불리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도
“홍길동 보호자분~”
카페에서도
“아기 엄마 오셨어요?”
심지어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얘는 지금 완전 엄마 다 됐더라~”
그런 말들 앞에서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묘한 공허함이 일었어요.
나는 여전히 나인데,
사람들은 이제 나를
‘누구 엄마’로만 기억하는 것 같았거든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하지만 그 낯선 이름 속에는
내가 사랑으로 만든 시간이 담겨 있었어요.
첫 돌 때 아이가 불러준 ‘엄마’라는 단어.
잠들기 전 나를 찾으며 부르던 그 작고 맑은 목소리.
‘엄마’라는 이름은
그 어떤 수식어보다
더 따뜻하고, 더 단단한 이름이더라고요.
잃은 게 아니라,
내 삶에 하나가 더해진 거였어요.
맞아요.
가끔은 그냥 ‘선경’으로 불리고 싶어요.
아이도 없고, 책임도 없고,
그냥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들 속에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엄마 최고야.”
그 한마디를 하면
그 모든 갈증이 사르르 녹아버려요.
여전히 나 자신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지금 나는
‘엄마’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며
새로운 균형을 배우고 있어요.
그건 어렵지만,
참 고요하고 따뜻한 여정이에요.
어느새 내 이름보다
‘엄마’가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건 내 이름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을 품은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는 뜻이겠죠.
나는 이제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 속에
나의 이름도 함께 살아있다는 걸
조용히, 단단하게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