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녹아 있는
지옥 같던 고등학생 생활도 끝나는구나.
성장을 하긴 했는데, 그게 긍정적인 방향은 아닌 것 같다.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것이, 당위성의 관점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면.
외롭진 않았다. 아니 외로웠는데,
혼자는 아니었다, 혼자였지만.
인생의 가치관이 다원의 폭격을 맞고
다시 쌓아올리니 굳세면서도 또한 연약하다.
느껴야만 하는, 복잡미묘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타자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조망
모든 순간이 늘 그렇듯 어색하다
떠나보낼 친구들은 나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어나갈 친구들에게 졸업식은 그저 하나의 의례일 뿐
그리고 절대 다수는 인간 실격이다.
길고 긴 터널을 아직 절반밖에 못 달려왔다
기쁨과 슬픔, 그리움이란 감정들은 감당하기가 벅찼다
내게 기쁨과 슬픔은 없었다, 대상이 다른 그리움만이
정처없이 나돌다 무의식 안으로 침잠한다.
이 또한 추억이겠지, 졸업 영상의 축하 문구
그 단 하나의 문장을 부정하기 위해
나는 고1때부터 이를 갈며 3년을 매일을 일기를 썼다
일기를 다시 보며 내가, 속한 공간을 얼마나 증오하고
나라는 존재자가 고통받았던 순간을 처참히 박제를 시키려고 일기를 썼다
추억 따위의 달콤씁쓸한, 그건 오직 미화에 불과하다
사회의 이념을 내면화한 불안정한 순간들의 집합체
더욱 성실히 톱니를 자처했지만
결국엔 바퀴는 마찰음을 내며 뒤틀린다
나는 얼마나 중요했는가?
너는 얼마나 중요했는가?
마음속에 증오를 담지 않는다
기쁨 또한 담지 않는다
감정과 가치를 관망하며, 어쩌면 방관하며
무지를 추앙하고 지식을 배척하는
사실을 숭배하고 가치를 부정하는
얼어붙은 메마른 사람
그것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인간상
얻은 것이라곤 인간에 대한 실망
그리고 약간의 작문 실력
불면증, 굽은 어깨와 허리, 반토막난 시력
자기 비관, 닫힌 내면, 고향 상실
이것이 고등학교라면, 어쩌면
대한민국의 인재상이라면 나는
미련 없이 언제든, 이곳을
이 나라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얻은 것들도 있었다
원석처럼 가능성을 지닌 몇몇 친구들을
가능성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내 몽매함의 위험성을
알 수 없었던 것들의 근거는
모든 것이 나의 뒤편에서 작용한 인과의 결과임을.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냐 한다면
이제는 조각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내가 바라는 이상을
내가 규정하는, 그래서 아마도 틀릴 세상을
내가 원하는 사랑을
내가 좋아해서, 그래서 아마도 어긋난 인연을
스스로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모든 것들을 나를 불태워 사랑할 것이다, 그것도 나의 의지로
절망감을 안겨준 모든 것들
그것 또한 결국 과거의 내 선택의 결과
성숙은커녕 결정이 끊없이 되풀이하는 것만 같아도
고통을 사랑하는 것은, 과거의 부정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했던 과거의 나를 향한
자애(慈愛)이자 자애(自愛)
어두워지고 나서야 보이는
밤하늘 속 몇 개의 은은한 별빛
태양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니 세상이 좀 더 어두워져도 괜찮다
내 마음 속 낮밤 또한 순환하며
햇빛과 달빛 그리고 별빛이
순서를 달리하며 나를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