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고 싶은 사람
https://youtu.be/1-xGerv5FOk?si=gUWA4MX4YmCRnruY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튜브를 자주 즐겨 보곤 했다. 그때는 유튜브의 최대 전성기였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유튜브에 게시하고 서로 공유하며 더 나은 방법을 고안해 냈다. 만들어진 결과물은 재투입되어 혁신의 밑바탕이 되었다. 말은 멋지게 하지만 사람들이 레고 자판기를 만들고, 레고 공장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트릭샷을 넣고 그런 시절이었다.
https://youtu.be/dNJdJIwCF_Y?si=tf-0gcyCM4GrLpid
https://youtu.be/iFzvVRyICyk?si=IvfURRCrLEnOd3Hi
https://youtu.be/ne54YZirmpc?si=lNJ7QgLSwFwoqqgm
나는 그저 이 과정들이 너무 멋질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에 댓글을 달았고, 수천 수만 개의 좋아요가 박혔다. 도대체 뭔 내용이길래, 뭐가 재밌길래 수만 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을까? 막연한 호기심에 알파벳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네이버 영어사전을 켜두고 유튜브 댓글을 한땀 한땀 번역해갔다. 댓글 하나를 완전히 번역해 냈을 때 나 또한 그 댓글에 피식 웃게 되었고, 하나의 도전적인 과제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이 밀려 올라왔다. 그렇게 영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스스로 영어를 깨우쳤다. 영어를 꺠우치다 보니 엄마가 집안에서 곧잘 틀어두고 하는 CNN과(지금은 안봄) BBC 뉴스들이 그저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진지한 얼굴로 대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트북으로 뉴스의 주제문들을 그냥 막 써보고 뉴스가 끝나면 마찬가지로 한땀 한땀 단어들을 찾아봤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내가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때는 되게 놀라웠다. 한국의 뉴스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접하며, 나는 이게 대한민국이 숨기고 있는 세계가 돌아가는 일종의 진리라고 생각하며 꽤나 경건하게 그런 뉴스들을 봤던 것 같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내가 국가의,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끼리 혁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중심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막연한 생각은 민사고에서 주최하는 GLPS라는 캠프에서 3주간 합숙을 하며 점점 윤곽이 잡혀 갔다.
캠프에서는 내가 영어로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연설문을 쓰고 300명 앞에서 영어로 발표하고, 책들과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를 해서 내가 직접 팀장이 되어 국제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주최하기도 했다.
새벽 2시까지 스피치 연습을 하고(물론 거하게 말아먹었다), 다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해 가며 다양한 주장을 하나하나 덧붙여 가고 서로 검토해 가며 열정 가득한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모든 팀이 그걸 공유했다. 멋드러지게 만들어 내 프로젝트가 1위를 차지해서 함께 소리질렀던 기억도 좋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알게 됐던 경험인 것 같다.
초5때 쯤에 Alan Walker 라는 DJ를 알게 되었다. 노래도 좋지만 정말 좋았던 건, 모두가 마스크를 쓰면 모두가 Alan Walker 라는, 익명성으로부터 기반한 동질성,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를 평화와 환경 그리고 하나된 이념으로 묶는 가사와 뮤직 비디오는 앞서 가진 생각을 더욱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춘기 시절 세상은 외롭고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보통 깨닫기 마련이다. 나 또한 외로웠지만, 당장 내 주위가 아닌 전 세계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듦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에 전념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드니까 외롭지가 않았다. 오히려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Anywhere, whenever, apart but still together, I know I’m not alone, I know I’m not alone”
꿈은 문장이지 절대 단어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상주의자인 내가 바라는 건 다름이 아닌 이런 것들이다. 인종과 성별 그리고 계층과 관계없이, 모두가 서로를 믿으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그 아이디어들이 서로 융합하여 더 큰 부가 가치를 창출해내고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요람이 되는 일련의 과정. 그러는 과정에서 전쟁도 분쟁도 없어지며 모두가 지식의 아름다움과 인간 보편의 권리를 향유하며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내가 되고 싶다. 구체적으로 나는 그 아이디어들이 모일 수 있는 집결지에서 일하고 싶다. 한 곳으로 모인 아이디어들을 그것이 필요한 또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마치 예전의 전화 교환원 같은 존재. 그러면서 나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새로운 관점을 접하며 점점 인간 보편의 원리에 눈을 뜨게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지금처럼 정보가 곧 자본이 되는 정보 사회에서 이런 생각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럼에도 이미 인터넷이라는 아주 탈중심적인 대중 매체가 생겼고, 나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마냥 불가능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이상 지식은 권력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Alan을 좋아하고 GLPS에 다녀온 시점은 비트코인이 뉴스의 전면에 처음으로 등장하곤 했던 시기였다. 뉴스를 보며 나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사람들이 왜 그리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경제라는 학문에 입문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경제라는 학문은 상당히 이론적이면서도 그것이 곧바로 실제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포함한 사회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 도전적으로 내 흥미를 자극시켰다. 경제학을 통해 세상을 하나로 연결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경제 이론을 만들어 세상의 사람들을 평화로운 사회로 유인할 인센티브를 은밀히 넣어 전파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이성의 극치로 보이는 냉혈한 경제학자들은 실제로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사진들이다.
나중에 커서 경제학으로 사람들을 연결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싶었다. 고등학생 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교수가 될 자질은 부족해 보이고, 경제학 전공을 살려서 다국적 기업이나 씽크탱크 혹은 정부청사 등에서 일하다가, 추후 국제기구로 경력 스위치를 해 실제로 세계를 연결짓는 프로그램에 내가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은행(World Bank)같은 곳에서는 개발도상국에 금융적 투자를 해 도시 기반 인프라를 구축해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프로젝트를 한다. 그런 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이 되니, 내가 바라오던 세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전쟁과 갈등은 멈추기는커녕 계속해서 발생하고, 환경은 계속 악화되어만 간다. 단순히 경제학과 같은 이론들은 내가 꿈꾸는 이상 사회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환경과 국제 정치 및 외교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경제 하나로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바가 적을 것 같았다.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사람을 요약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국가에 구애받지 않고 경제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와 환경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내가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낸 것들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내가 미래에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만 해도 장이 뛴다. 사명감이 강하게 느껴지고 뭔가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이 느껴진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과 실제로 내게(세계에게) 도움이 되는 건 별개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에게 덮어씌운다. 아마 내가 유년기때 살았던 삶의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살면 살수록 내 마음이 두근대는 경험들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 첫사랑으로, 마음이 힘들 때 불쑥 나타나 마음을 난도질하고 사라져서 늘 시렵다. 두 번째는 내 열정으로, 마음이 풍만하거나 힘들 때나 상관없이 가끔 나타나는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달아나고 심장이 두근대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세계를 연결하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