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의 나에게

고향 상실[故鄕 喪失]

by 울림

고향에서 출발해 고향에서의 기억을 태워나가는 기차는, 더는 태울 기억이 없게 되자 나아가질 않는다

기차에서 비상 탈출을 해 밖으로 내리니, 어둠 속 내가 속한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짧은 탐사 후 나는 내가 아무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향에도 목적지에도 저 멀리 동떨어져, 나는 외로이 서 있었다


근처를 떠돌다 보니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워하는 고향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간 고향에는 처음 보는 이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고 한다

사랑했던 아이는 나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소식도 희미해 나는 그 아이의 흔적을 더는 고향에서 찾을 수 없었다


남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나는 지금 어디서 방황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고향에 찾아왔지만, 나의 고향을 이루고 있던 요소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조각조각나 아주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방향과 맞지 않은 열차를 탔다가 결국 역으로 돌아왔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되어 고향의 파편을 집어든다

아프더라도 이제는 고향 때문에 아프고 싶어서

그 파편을 집어들어 내 몸을 아주 난도질내 본다


시린 아픔과 함께 과거의 나 하나가 떠오른다

과거의 내가 학교에서 10년 후 미래의 내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너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너는 너의 길을 걸으라고, 나는 너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집은 파편은 그 편지였다

10년 뒤에 열어봤어야 할 편지를 어쩌다 일찍 열어보고

점퍼 옆주머니에 고이 접어 모신다


나는 이제 떠나간 것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내가 떠나간, 나를 떠나간 내 고향의 모든 것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이에게도, 이상을 순수하게 꿈꾸기만 했던 과거에게도 행복을 줄 수 없다

그치만 고향이 떠나가도 나는 그대로이면서

또 많이 바뀌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사랑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자

무너졌던 고향의 조각들이 다시금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내게 고향은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들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고향 중 어느 파편밖에 복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치만 나는 그 파편이라도 소중히 지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넓었는지

그리고 내가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얼마나 나를 몰아세웠는지

그렇게 해서 닫혀 나아갈 수 없게 된 문만 몇 개인지 후회했다


더 이상 남을 행복하게 하려고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10년 뒤의 나는 여전히 불안정할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10년 전의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된 첫 생일날에 그 아이가 생각보다 일찍 내게 찾아왔다

나는 그 아이에게 안겨 대성통곡을 했다

그 아이는 자상한 엄마의 미소로, 굳센 아빠의 미소로, 사랑했던 아이의 미소로, 꿈꾸던 시절의 미소로

내게 조만간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아이에게 안길 때는 다시 모든 게 완전한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직 그 아이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그 아이가 내게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마냥 기쁘기만 하다

다시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고향의 기차역에서 기차 하나를 잡아 탄다


오라, 달콤한 지옥이여

너가 전혀 무섭지 않다

나는 홀로지만 이제 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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