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알고리즘

세상은 넓다는데, 왜 나는 돌고 도는 걸까

by 도토리 Dotori


처음엔 참 편리했습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먼저 보여주고,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를 손쉽게 접하게 해 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내가 원래 좋아하던 것만,

내가 오래 머물렀던 주제만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니까요.


오늘 검색한 쇼핑 키워드 하나가

모든 광고를 뒤덮습니다.

이미 관심이 사라진 내용임에도

끝없이 따라붙는 걸 보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큰 세상은 사라지고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듯합니다.


사고가 자꾸만 닫히는 기분.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얻고 싶은데

어느 순간, 내가 이미 선택된 세계 속에

가둬져 있는 듯 느껴집니다.


편리함의 그림자가 이렇게 답답할 줄,

처음엔 몰랐습니다.


가끔은 낯선 길을 일부러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고르지 않았던 책을 펼치고,

우연히 흘러나온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이야기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습관처럼

추천 영상 버튼을 누르고 있겠지요.

알고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망할 알고리즘 속에서요.



<작가의 서랍>


오랜 프리랜서 생활 덕분에

혼자 일하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고리즘마저 나에게 꼭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편리하면서도 왠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세상을 더 넓게 바라봐야 하는 나로서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지요.

최신 유행이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어떤 것에 열광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40대 아이 엄마인 내 알고리즘이 아니라

20대 후반이나 30대 싱글 여성들의 알고리즘에

살짝 숟가락 얹고 싶어 집니다.

그들의 추천 리스트에 올라온 노래를 듣고,

그들이 빠져드는 유행어를 따라 하고,

그들의 쇼핑 장바구니를 기웃거려 보면서

‘나만 놓친 세계’가 있진 않을까 궁금해지니까요.

뭐라 검색을 해야
나에게도 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걸까요?

‘MZ세대 요즘 핫한 것’이라고

검색창에 입력해도
그건 결국 그들의 알고리즘이 아닙니다.
내가 억지로 손을 뻗어본다고 해도
내 피드에는 끝내 노출되지 않는 세계지요.

알고리즘의 벽은 생각보다 높아서,
타인의 세계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결국 내가 직접 부딪히고,
내가 낯선 자리로 걸어 들어가야만
조금이라도 스며들 수 있겠지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망할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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