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덜 된 나를 인정하고, 욕심 대신 속도를 지킨다.
예전의 나였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고 싶은 일을 다 해냈을 겁니다.
야근이 이어져도, 하루 이틀쯤은 잠을 줄여도
그다음 날이면 금세 회복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하루만 무리해도 며칠 동안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작은 피로가 쌓여도 훨씬 크게 느껴지고,
그 피로가 마음까지 잡아당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달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변화겠지요.
대신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려 합니다.
내 현실과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길을요.
욕심을 줄이고, 속도를 낮추는 게
포기라는 뜻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저 이제는 달리기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작가의 서랍>
전시회에서 작가로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좋은 기회일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저는 꾹 참았습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를 것 같아서요.
이미 두 권의 그림책 작업을 진행 중인데,
거기에 또 무언가를 더한다면
제 몸과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예전의 저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겁니다.
30대의 저는 부족함 없이
한 번에 여러 일을 붙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마음은 여전히 앞서 가지만,
속도는 두 배, 세 배나 느려진 걸 느낍니다.
아마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그 아쉬움 속에서 새로운 배움을 발견하는 때.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저는 준비가 덜 되었다는 걸 압니다.
전시라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단단히 다져야 할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조급히 욕심내는 대신,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시간이겠지요.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더 가지려는 대신,
지금 품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요.
나이가 들며 배우는 것은,
더 빨리 달리는 법이 아니라
때로는 멈추고 비워내는 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욕심 대신 잠시 숨을 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