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이가 오히려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세상엔 억울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 말이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밟히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을 전한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문제일 텐데도
세상은 자꾸만 힘 있는 쪽의 편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때로는
진실보다 침묵이 더 안전해 보이고,
정직함보다 눈치가 더 유용해 보입니다.
하지만 억울함을 감추고 사는 세상이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억울함에 귀 기울여야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로 설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묵인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진실을 말한 이를
문제의 근원처럼 몰아갑니다.
진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세상은 그것을 보지 않은 척하며
억울한 이를 더 깊이 밀어 넣습니다.
결국 남는 건,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침묵과
말해버린 사람의 고독뿐입니다.
<작가의 서랍>
사회에서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띵똥—, 학교 공지가 알림과 함께 떴습니다.
그 공지를 읽는 순간,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사용하는 학교 시설의 문제를 제기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불편을 바로잡기 위한,
당연하고 정당한 목소리였습니다.
학교가 단순히 사실관계만 정리해 답했다면
그저 행정적 처리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공지 속 표현들은 문제를 제기한 이들을
마치 문제의 근원처럼 비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책임의 무게는 사라지고,
오히려 목소리를 낸 사람이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목소리가
왜 불편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할까요.
진짜 문제는 외면한 채,
문제를 제기한 이를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는 이 구조.
결국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조차
불편한 진실을 막아서는 권력의 논리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안전이 아니라,
권력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다시 한번 깊이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