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중한 막냇동생 '슬비'를 떠올리며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작가가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 뽑은 《푸른 개 장발》 동화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개를 팔아 용돈벌이를 하는 외로운 노인 목청씨와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씨어미 삽살개 장발의
삶과 꿈, 만남과 헤어짐, 갈등과 화해를 들려준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사람들, 개, 고양이, 닭의 얽힌 이야기는 누구도 우위에 서서 따뜻하거나 감상적인 교감을 나누게 하지 않는다. 모두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서로의 삶의 무게로 바라보고, 서로 다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관계에 세의 거리와 갈등을 그대로 그려낸다.
목청씨는 마치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뚝뚝하지만 속마음은 다정한 목청 씨와 주인의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늘 그 품을 벗어나고픈 장발의 모습에서 사춘기 나의 모습고도 같았다.
아픈 몸으로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달팽이 계단을 만드는 목청 씨에게서 팔려간 새끼를 찾아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는 장발과 죽어가는 자식을 애써 담담하게 토닥이는 장발에게서 자신을 보는 목청 씨!
목청씨와 장발이에게서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우리 삼 남매에게도! 가슴 아픈 기억들...
시장에 갔다 오시며 아버지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슬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 '이슬비'
슬비는 우리가 다니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와 내 어깨 위에 두발을 걸치며 얼굴을 핥아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컹컹! 거리면서 신나게 꼬리 치며 달려올 텐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이 달려와 슬비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슬비는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을 살피고, 동네를 돌면서 샅샅이 찾아봤지만 슬비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아닐 거야.'
엄마가 일하고 있는 밭에 가서 슬비 어딨 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슬비 찾지 마라. 슬비 안 올 거다."
"거짓말! 왜 안 와? 어디 갔는데 왜 안 와? 엄마."
"엄마가 얘기하면 그런 줄 알아. 앞으로는 슬비 못 보니까 찾지 말고 잘 지내거니 생각해. 알았지"
그날, 나와 동생은 저녁을 먹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개장수에게 팔려갔다는 것을...
슬비가 우리 집에서 마지막 강아지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강아지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때는 아버지가 많이 서운하고 화도 났었다. 지금 다시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 당시 아버지와 엄마도 슬비를 보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가 되어서야 아버지와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슬비가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 헤어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내가 인생을 조금 아는데 말이야. 새끼들 다 데리고 사는 개는 한 번도 못 봤다." -P.97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자앙은 제법이지."
단 한 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 번번이 슬프게 하고, 화나게 하고, 혼자 남게 만든 사람이라 장발은 목청 씨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곁을 떠나지 못했고 끝까지 미워할 수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P. 167
“어린것들은 자라고, 늙은 것들은 지쳤어. 겨울이 뭘 감추고 있는지 겪어 봐야 안다니까.
겨울은 비밀이 많지. “ -P.43
“너와 술을 나눠 먹다니. 쓸쓸한 이 마당에 같이 있는 게 바로 너라니. 허헛 참…….”
목청 씨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장발은 느긋한 기분이 되어 길게 엎드렸다. -P.166
이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달팽이 계단을 만드는 목청 씨와 자식을 잃고 미운 목청씨를 떠나지 못하는 장발이 서로 막걸리를 마시며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밖에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애틋하면서도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관계!
서로 간의 사랑을 주고받으면서도 아픔과 상처 또한 주는 관계임에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존재이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모든 삶은 차가운 겨울과도 같다.
하지만 그 삶 속에서도 애정은 싹튼다.
#푸른 발장발 #겨울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