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때문인지 아들은 늘 높은 곳에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올려놓는다. 거실 책장 상단은 아들 장난감 진열장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너무 높은 곳에 두다 보니 자신도 꺼내기 불편해 쉽게 갖고 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내려놓지 않는 것을 보면, 동생에게 장난감을 뺏기는 스트레스보다는 그게 낫나 보다.
집에 장모님이 찾아오신 저녁, 아들은 자랑할 것이 많다. 유치원에서 받은 책도 자랑해야 되고, 칭찬 스티커를 모아서 받은 장난감도 자랑해야 했다. 할머니 반응에 어깨가 으쓱해진 녀석은 이젠 보물 상자까지 꺼내 엊그제 주워온 나무 열매까지 보여주기 바빴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아들 요구에 따라 이것저것 꺼내주다 보니 대화는 자꾸 끊겼고 둘째는 통제 불능이 됐다. 딸은 시샘 때문에 오빠 장난감을 뺏고, 아들은 서럽게 울어대는 이 익숙한 풍경.
위기상황 관리는 아빠 몫이기에 아이들에게 한 소릴 했다. 그리고 아들에겐 이젠 장난감을 내려놓고 서로 사이좋게 갖고 놀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상대로 녀석은 싫다며 저항했고, 난 강요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보다 못한 장모님이 아들을 달래주며 내게 한 마디 하셨다.
"아니, 자네도 방안에 장난감을 잔뜩 넣어둔 진열장이 있으면서 왜 아들 마음은 그리 이해를 못 해주나?"
내 방에는 책장만큼이나 커다란 피규어 진열장이 있다. 이 진열장은 처음 집에 놀러 오는 손님에게 선뜻 방을 보여주기 민망한 이유가 된다. 진열장 속 다양한 프라모델 건담 때문인지, 책장을 가득 채운 책이나 진열된 도자기는 손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대체로 손님들은 건담의 가격이나 만든 시간을 물어보고 감탄하지만,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워 반응하기 부끄럽다.
건담이 뭔지 잘 모르던 내 어린 시절, 갖게 된 경위도 잘 떠오르지 않는 커다란 건담 로봇 하나가 집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니 조악한 국산 모조품이었던 것 같다. 건담이 너무 좋은 나머지 목욕할 때도 욕조에 넣고 놀다가 그만 흐물 하게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직도 플라스틱이 그리 허망하게 녹은 이유를 모른다. 다만 더는 갖고 놀 수 없던 건담 때문에 몹시 속상했던 기억은 남아있었다.
늘 무언가에 취해 살던 삼십 대엔 편히 잠드는 날이 드물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헛헛함을 인터넷 쇼핑으로 메우려 한 적도 있었다. 물론 물질은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야 금방 깨달을 수 있었으나, 다른 해소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건담 프라모델을 보았다. 작은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운 로봇은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늦은 나이 장난감 구매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사야만 했다. 구매 클릭만으로도 이미 난 건담을 손에 쥐고 놀던 어린애가 되었다.
며칠 밤을 건담 조립으로 보냈다. 섬세한 부품들을 집중하며 조립하는 과정이 내 성향과 맞았다. 생각은 오롯이 건담 하나뿐이고, 귀는 음악을 향해 있으니 내면이 평화로웠다. 그렇게 조립에 빠져 이름도 잘 모르는 건담까지 구입하게 됐다. 내 책장은 점점 로봇으로 채워졌고, 결국 진열대까지 사게 되었다. 끝 모를 수집은 결혼을 기점으로 멈췄지만, 가끔 진열장에 놓인 건담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처분도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있다.
아이들 다툼은 그 시끄러운 시작과는 다르게 싱겁게 끝났다. 딸은 상황 파악이 빨라 애교를 떨며 재빨리 자기편을 찾고(아빠), 아들은 시무룩해 있다가 다시 할머니에게 자신의 보물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자신의 장난감을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장난감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인지 신이 나서 설명했다. 할머니의 맞장구는 아들을 춤추게 했고, 딸은 질세라 자신의 인형들을 데려와 할머니와 만남을 주선했다.
장난감엔 아이들 추억이 담겨 있었다. 나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 장난감을 아끼는 아이에게 아빠는 성인의 아량을 바란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 아이들이 노는 틈을 타 잠시 내 방에서 진열장을 바라봤다. 건담들과 내부 유리판에 쌓인 먼지가 보였다. 어느새 아들은 쪼로로 달려와 내 다리에 매달리곤 아빠 뭐 하고 있냐며 물었다. 대답이 궁색해 이젠 나가서 놀자는 나의 말에 아들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