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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May 03. 2023

신청곡

영화 그랜 토리노

지난 글에서 댓글로 영화 한 편을 추천받았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뜻밖의 선물을 받은 후 포장을 뜯어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이제는 감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 및 연기를 한 2009년도 개봉 영화입니다. 전작인 밀리언달러 베이비(2005)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서 연기로도 노익장을 과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담배를 물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박제된 것 같은 배우지만, 극 중 보이는 강퍅한 노인의 모습도 그다워 보입니다. 어느 배역이든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건 그의 연기력을 방증하는 것이겠죠.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에서 슬픔보다는 언짢은 기색을 보입니다. 가만 보니 자식들은 귓속말로 아버지를 조롱하며 농담이나 하고 있고 손자들 역시 복장과 태도에서 할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도대체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월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선 훈장이 가득한 전쟁영웅이지만 자녀들에게는 그렇진 않았나 봅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겐 나약한 자식들은 못마땅해 보였을 것이며, 그 엄격함에 지친 자식들은 대화를 단절해 왔을 겁니다.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도시로 사람들이 떠난 후 슬럼화 되어가는 동네엔 외국인 이민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홀로 지내는 월트에게도 아시아계 몽족 이웃이 생겼지만 말도 안 통하며 조국을 침략한 것만 같은 새 이웃이 그는 못마땅합니다. 더군다나 가장 아끼는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이웃의 소년 타오가 훔치려는 장면을 목격한 후 그의 분노는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밤 중에 자신의 마당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갱단의 위협에서 타오를 구해준 일이 월트의 일상에 의도치 않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의 이웃, 즉 고마움을 느낀 타오의 가족이 그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사정을 알게 된 타오의 부모는 자식이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켰으므로 월트의 일손을 도와 사죄하길 바라죠.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월트와 소극적인 소년 타오 모두가 원치 않는 동행을 이어가다가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며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네. 여기서 저는 왜 이 영화를 추천받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지난 리뷰 '오토라는 남자'와 겹치는 설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노인에게 찾아온 이웃으로 변해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달달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자국민들의 호응을 얻어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은 어느 면에선 처절하기까지 하기에 우리는 숨을 죽이고 영화를 지켜보게 됩니다.


월트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를 상징하는 듯 스테레오 타입의 보수주의자죠. 그는 트럼프처럼 외국인 이민자를 매우 혐오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유색인종은 그들에겐 경멸의 대상 또는 침입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영화의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드는 창립 초기부터 저렴하고 경쟁력 있는 자동차를 양산하며 미국인들의 국민 브랜드로 사랑을 받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자 그 자신감의 표현으로 1970년대 초기에 고급 스포츠 세단을 만들죠. 그 차가 바로 그랜 토리노입니다. 극 중 포드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온 월트는 집 앞그랜 토리노를 세워놓고 맥주를 마시는 일이 취미입니다. 문 앞에 걸려있는 성조기와 그랜 토리노는 그의 자부심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때는 미국의 자부심 중 하나였던 포드의 위상은 가격과 성능 모두가 뛰어난 외제차에 의해 흔들리게 됩니다. 일제차를 못마땅해하는 월트의 대사에서도 우리는 그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고 과거의 영광만 남은 차. 월트는 자신이 애정하는 그랜 토리노와 닮았습니다.


월터는 과거에 갇혀 삽니다. 아직도 전쟁의 참혹한 기억 속에 살고 있고,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했기에 그 방어기제로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식들에게도 자상하지 못했고 주변에도 그럴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모두가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생전 월터의 아내는 그런 남편이 안타까웠을까요, 죽기 전 그녀는 젊은 신부에게 월트에게 고해성사를 받아달라 부탁합니다. 아내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신부조차 월트는 비하하고 무시하지만 그의 끈질긴 설득은 단단한 마음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결국 월트는 그 다운 방법으로 마지막 속죄를 하게 됩니다.




영화의 흐름이 매우 직선적이기에 결말의 예측이 어렵진 않습니다. 만 마지막 O.S.T까지 듣고 나서야 영화 전반에 흩어져있던 미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그랜 토리노라는 제이미 칼럼의 곡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불렀는데 원곡보다 그의 목소리에서 많은 것이 그려졌습니다. 마치 고해성사 같은 그의 노래는 당분간 저의 플레이 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월트처럼 술 생각을 참기 어려웠는데 다른 분들은 어땠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gentle now the tender breeze blows

부드럽고 약한 바람이 불어


whispers through my Gran Torino

나의 그랜 토리노에 속삭이네


whistling another tired song

또 다른 지겨운 노래로 휘파람을 부네


(그랜 토리노 O.S.T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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