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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May 22. 2023

위대한 이야기꾼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 파벨만스

질문입니다. 평소 영화를 보기 전 어느 정도 정보를 파악하고 보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냥 편하게 보는 편인가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연초에 개봉하곤 소리소문 없이 국내 상영관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평점을 찾아보니 극찬은 넘치는데 관객수가 8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묘한 위화감이 들더군요. 아직 전작 레디 플레이어 원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저로서는 스필버그라는 마법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을 했습니다.    


궁금한 김에 찾아본 유명 포털의 소개는 이렇습니다.

난생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 아빠 '버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중략)....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네이버 영화 소개 중 -
세실 B. 드밀 감독의 1952년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작- 지상 최대의 쇼


저도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다 보니 글을 작성할 때 전달할 정보의 양과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스토리를 늘어만 놓는다면 스포일러에 가까운 요약글이 될 것이고, 감상에만 치중한다면 다른 분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을 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유명 포털의 파벨만스 소개글은 긴 영화를 효율적으로 압축했으나 영화의 매력을 잘 짚어내진 못했습니다. 소년 '새미'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다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이지만 결국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단순히 주인공 '새미'가 영화에 빠진 계기와 그로 인한 결과에만 주목하게 되면 감동은 떨어지고 재미를 느끼긴 어렵습니다. 파벨만스가 좋은 영화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스필버그의 가족, 즉 내밀한 가정사를 통해 예민하며 인간적인 모습의 거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자전적인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웃 모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집을 전구로 밝히며 꾸미는데 비하여 파벨만스 가족은 집 밖을 화려하게 꾸미는 대신 하누카라는 유태인 행사를 합니다. 하누카는 9개의 촛대가 있는 등을 8일간 집에 켜두고 예루살렘 탈환을 기념하는 행사를 의미하죠. 하지만 보수적인 미국의 성격상 유별난 이웃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터를 잡은 동네에선 다름을 서서히 인정받았겠지만 후에 아빠의 커리어를 위해 전학을 간 학교에선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스필버그의 기억 중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깨닫게 되는 일. 다름은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이웃집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파벨만스 가족의 하누카와 대비가 된다.


부모님의 선물로 시작된 새미의 영화촬영은 취미를 넘어 점점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인정을 받을수록 더 잘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일까요. 독창적인 편집 기술까지 개발하며 촬영에 몰두하지만 영화의 영향력까진 이해하진 못하던 그때, 새미는 오랜 시간 존재도 몰랐던 보리스 삼촌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의 전날밤 꿈 때문인지 그의 방문 전 불길했던 예감과는 달리 보리스 삼촌은 여러모로 신비한 인물이었죠. 전국을 순회하며 서커스공연을 하던 그는 새미에게 예술에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쳐줍니다. 예술은 외로우며 고통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중독자이고 예술은 우리의 마약이다.  예술은 너의 마음을 찢어버리고 너를 외롭게 할 거야.
보리스 삼촌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예술은 영화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입니다.


새미는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는 몇 가지의 필요조건을 갖췄습니다. 예컨대 가족 간의 강한 결속력, 충분한 자존감, 그리고 타인에게 존중받을만한 능력이 이에 해당될 겁니다. 하지만 그 필요조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직은 미성숙하기에 청소년기라는 의자를 지지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에라도 금이 간다면 그 의자는 심하게 흔들리거나 부러지기 쉬울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 균열은 가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뛰어난 공학자인 아빠와 피아니스트 출신의 엄마는 서로를 아끼는 부부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어머니는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을 느낍니다. 아이들을 위해 커리어를 멈추고 살아가지만, 그보다 힘이 드는 건 코드가 맞지 않는 남편과 사는 일입니다. 그녀는 자각하진 못했겠지만 남편의 친구 '베니'를 며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새미의 영화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이유 없는 반항으로 여겼던 아들의 태도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엄마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늦게나마 가족을 지키려 노력해 보지만 이미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기엔 많이 늦었습니다. 결국 한 마리의 새 같던 엄마는 자신을 찾아 새장을 뒤로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겐 새장의 빈자리만 크게 보일 뿐입니다.


엄마처럼 예술가의 기질을 갖고 있는 새미는 그런 엄마를 원망했지만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정서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새미이기에 가족 중 유일하게 엄마의 방황을 받아들이죠. 이는 그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김과 동시에 내적인 성장을 이루는 발판을 만들어줍니다. 엄마는 영화를 이해하는 마지막 키워드입니다.

그녀는 아들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스필버그는 이미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영화가 관객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는 누군가를 꿈꾸게 만들거나 자부심을 느끼게도 하며,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려 격동시키기도 하죠. 그리고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는 청소년기에 인간을 이해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파벨만스는 영화가 소통의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엄마를 용서하는 것도 영화를 통해서이며 아빠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와도 화해를 이루는 것 모두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영화의 배경지식을 알고 보는 것은 음식의 재료와 조리 기법 등을 알고 즐기는 파인 다이닝과 흡사합니다. 요리의 역사와 재료의 조리방식, 원산지 및 먹는 방식을 알고 나면 맛이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죠. 영화도 배경이 되는 지식을 미리 알고 감상하게 되면 사소한 장면도 다르게 보입니다. 보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고 싶어 진다고 할까요.


때로는 검색창의 별점에 속아 영화를 안 본 경우도,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짧게 축약된 리뷰를 통해 영화 전체를 짐작해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느꼈던 소감은 늘 달랐습니다. 영화라는 체험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 삼아 이뤄지는 소통이기에 남들과 똑같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리뷰가 존재하는 것이겠죠.


영화 말미에 서부극 거장 존 포드 감독을 우연히 만난 새미는 큰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취미와 진로 사이에서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스필버그는 그 중요했던 깨달음의 순간조차 위트 넘치게 표현하여 모든 긴장을 풀어놓습니다. 역시 타고난 이야기 꾼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아, 주인공 새미(파벨만)를 모두가 페이블 맨(Fable-man 이야기 꾼)이라고 발음한다는 것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마지막 정보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서야 만들 수 있었다는 이 영화. 아직 안 보셨다면 오늘 한번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떤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정서적 지지자이자 예술가였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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