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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막걸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 독후감

by 돌인간


IMG_2172.jpeg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 채사장


전국에 눈이 많이 왔다. 며칠 동안 눈 관련 재난 문자가 오는 탓에 몇 번 잠을 깼다. 재난 문자를 보내는 공무원들도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매년 그렇듯 첫눈은 설렜고, 차가운 눈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에 대한 이상함을 느꼈다. 감상에 젖는 것과 별개로 눈이 온 출근길은 힘들다. 눈이 적당히 녹아서 발이 푹푹 빠지며 신발이 다 젖었다. 매일 하는 출근이지만 오늘따라 더 적응이 안 된다. '출근하기 싫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나쁜 것인양 고개를 휘휘 저으며 회사로 향했다.


IMG_2159.jpeg 눈 오는 날
막걸리 공장을 가지면 막걸리를 무한으로 마실 수 있겠네?

드디어 맞은 주말, 끼니를 해결하려고 전을 했다. 전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으니 편의점에 가서 막걸리 두 통을 사 왔다. 두 가지 맛을 보고 싶어서 장수막걸리와 지평막걸리를 사 왔다. 참 맛있었다. 편의점에서 한통에 2000원 정도에 구입했는데, 그 가치 이상이었다. 4000원이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생각하니 좋았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 공장을 가지면 막걸리를 무한으로 마실 수 있겠네?'


IMG_2166.jpeg 막걸리 두 통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도 수익이 남는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막걸리 공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을 해봤다. 비 오는 날이든 눈 오는 날이든 마음껏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아마 나는 항상 취해있겠지. 그런데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도 수익이 남는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꼭 막걸리 공장이 아니어도 된다. 어떤 공장을 차리더라도 믿음직한 관리자를 구한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막걸리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공장을 차려야겠다 vs 너무 억울하다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공장을 차려야겠다' vs '너무 억울하다' 이런 생각은 인류 역사 속에서 계속 되어왔다. 신석기 시대 돌칼을 발명한 A 씨는 B 씨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빌려주고 심부름을 시켰다. 중세 봉건시대 프랑스 기욤 씨는 백작님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일을 하지 않는 백작님에게 곡식을 바쳐야 했다. 근대 영국에서 스미스 씨는 부르주아 사장님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았다. 사장님은 공장에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엄청나게 부자였다. B 씨, 기욤 씨, 스미스 씨는 '나도 생산수단이 갖고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되며 세상을 움직여왔다.


IMG_2169.jpeg 호박전과 버섯전
대공황이 찾아왔다.

시간이 흘러서 1929년 미국이다. 존 씨는 오늘도 빵 공장에 일을 하러 간다. 존 씨는 이번 달 월급이 확 줄었다. 사장님은 다른 공장보다 빵을 싸게 만들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자연스레 단골 맥줏집으로의 발걸음이 끊겼다. 월급이 줄어든 건 존 씨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도 가격경쟁의 이유로 모두 월급이 줄었다. 맥줏집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맥줏집은 망해버렸다. 그리고 존 씨가 다니던 공장도 망해버렸다. 통장 잔고가 없어진 사람들이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빵도 잘 사 먹지 않게 되었다. 신발 공장, 철물점, 모자 가게 모두 망해버렸다. 대공황이 찾아왔다.


사장님은 열심히 일 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됐다.

대공황을 겪은 사람들은 초기 자본주의가 가지는 한계를 발견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같이 죽을 판이었고 조금 수정된 자본주의가 필요했다. 최저시급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존 씨의 월급이 무작정 내려가는 것을 막았다. 그래야 존 씨가 물건을 살 수 있고, 물건이 팔려야 공장이 돌아가니까. 세금을 걷어서 복지정책도 펼쳤다. 존 씨는 전보다 생활이 좋아졌지만 빵 공장 사장님은 불만이 생겼다. "나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공장을 차렸는데, 왜 내 세금으로 존을 먹여살리냐는 말이다!" 사장님은 열심히 일 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됐다.

IMG_2168.jpeg 김치찌개

다시 돌아와서 현재의 나. 나는 지금 현대에 살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다. IMF를 겪고 나서 복지는 줄었고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유를 높였다.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경제체제가 있고, 신자유주의는 대표적으로 미국, 한국, 일본 등이 있다. 사람들은 세금을 낮추고 기업을 도와야 한다(보수) vs 세금을 높이고 근로자를 도와야 한다(진보)로 싸우고 있다. 좋으나 싫으나 나는 지금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막걸리를 더 효율적으로 많이 마실 수 있을지를

IMG_2170.jpeg 두 통에 빈 막걸리 통
이 마을을 알려면 이 마을을 떠나봐야 한다.

[책 소개] 이 마을을 알려면 이 마을을 떠나봐야 한다. 나의 세계에서 이 마을이 전부라면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은 이 마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은 어떤지 알고, 인정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를 하나의 연결되는 이야기로 설명해 준다.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들을 친숙한 예시를 이용하여 이해를 돕는다. 책의 제목을 보고 가졌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져있고 깊이감이 있었다. 당신의 마을에 대해 알고싶은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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