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버블붕괴는 어쩌다 시작되었나 독후감
뭐든지 '갑자기'가 문제다.
백종원님으로 유명한 예산시장에 다녀왔다. 시장 내부 인테리어를 잘해놔서 구경하기 좋았고, 맛집도 많고 군것질거리도 많아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장에 들어가면 식당들 사이 광장에 수많은 테이블이 가득했고 음식을 주문해서 먹기 수월했다.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많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다면 시끌벅적 즐거운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았다. 예산시장 리모델링과 마케팅은 성공한 프로젝트 같다.
예산 시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식당의 월세가 많이 올랐을 것이다. 장사가 잘됨에 따라 상가 이용의 수요가 몰리면 당연히 월세가 오른다. 너도나도 웃돈을 주고 장사를 하고 싶어 할 테니까. 하지만 상승 폭이 과하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지금의 이 인기가 일시적이라면? 그리고 예산시장의 인기가 떨어지고 가게들은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갑자기 우후죽순 망한다면? 인기가 떨어져서 월세가 조금씩 다시 떨어진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월세와 인기가 갑자기 떨어져 버린다면 예산시장은 아마 지금의 인기를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결정해 준다. 공급이 일정할 때 인기가 높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인기가 낮아지면 가격이 내린다. 이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뭐든지 문제다. 갑자기 가격이 내려간다면 타격이 크다. 나는 예산시장이 좋아서 앞으로도 잘되기를 바라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바람으로 나쁜 경우를 상상해 본다.
[이 상상 속 이야기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이며 현실과 관계가 없습니다]
싱싱시장의 인기를 보고 빚을 내서 건물을 산 가상의 인물 김철수 씨를 상상해 보자. 김철수 씨는 은행에서 돈을 잔뜩 빌려서 싱싱시장의 건물을 20억에 샀다. 은행은 싱싱시장의 인기를 믿고 건물을 담보로 돈을 왕창 빌려줬다. 김철수 씨는 높은 월세를 받으며 은행 빚을 갚아나갈 핑크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먹방 유튜버가 싱싱시장에 대해 혹평을 쏟아냈다. 음식의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 것이다. 사정을 알고 보니 식당 사장님이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음식값을 마구 올려버리고 식재료값을 줄이기 위해 질 나쁜 야채를 사용한 것이다. 사실 다른 점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뒤 다른 유튜버와 언론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싱싱시장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들의 인식은 급격히 안 좋아졌고 싱싱시장은 순식간에 발걸음이 끊겼다.
점주들은 더 이상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시장을 떠나갔고 더 이상 김철수씨는 월세를 받을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건물을 내놓았지만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 건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나 할 것 없이 건물을 내놓았다. 은행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김철수 씨는 파산했고 건물은 담보로 넘어갔다. 은행은 담보로 받은 건물을 팔려고 했지만 이미 건물의 가격은 헐값이었다. 은행은 싱싱시장의 인기만을 믿고 이미 많은 사람에게 담보대출을 해준 터였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은행도 파산했다.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싱싱시장의 건물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한 기업들도 은행 담보대출로 건물을 잔뜩 사놨었다. 김철수 씨, 은행, 기업들이 줄파산해 버렸다. 그리고 싱싱시장과 주변 경제 인프라는 파괴되었고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했다.
[상상 끝]
이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이게 불과 30여 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은 1990년 버블 붕괴가 일어났고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을 겪었다. 마이너스 금리가 생겼고, 일본인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으며 성장률은 처참했다.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일본은 패망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한창일 때 싸움에서 벗어나 설비투자에 집중했다. 전쟁 이후 일본인들의 성실함, 특유의 장인정신도 일본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의 가전제품과 자동차는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미국에서는 닉슨쇼크로 금리가 올랐고 일본은 대미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것은 영원할 것 같았고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은 '인기'가 많아졌다. 사람들은 집을 사면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믿음 속에 무작정 집을 샀다.
모든 것은 흥망성쇠가 있나니, 일본의 영광도 영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대일무역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먼저 1985년 플라자협의로 엔화의 가치가 올라갔다. 1987년에는 대일 반도체 보호무역을 실시했다. 엔고현상과 보호무역을 버티지 못한 일본의 반도체 기업은 무너졌다. (그 자리를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차지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졌다.
일본 정부의 실수도 버블 형성에 한몫했다. 일본 대장성(한국의 기재부 느낌)은 기업들이 주식 등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줬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하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서서히 낮아지는 것을 보고, 설비투자를 활성화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돈을 확보한 기업은 설비에 투자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은 폭등했다. 한때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기업과 개인은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바보 같이 일을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부동산을 사면 무조건 오르니까. 은행도 반드시 오를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마구 빌려줬다. 사람들은 편함을 추구했고 자신의 일 보다는 부동산 차익 투자로 편하게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기업은 설비에 투자하지 않았고 기술 개발은 멍청한 짓이었다. 국가의 경쟁력은 낮아지는 와중에 주식과 부동산은 막연한 상승 심리로 폭등했다. 버블이었다.
버블은 갑자기 무너졌다. 너무 가파르게 상승한 이유도 있고, 정부에서 무리하게 잡으려고 시도한 이유도 있다. 어찌 됐든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갑자기 붕괴되었다. 싱싱시장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개인과 기업은 파산했다. 일자리는 사라졌다. 은행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고 파산했다. 돈 대신 회수한 건물의 가격은 이미 저 깊이 떨어지고 난 후였다. 국가의 경제 인프라가 무너졌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했다.
일본은 한동안 성장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 중에서는 적은 월급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문화가 조성되었다. 보수적으로 변해버린 일본은 디지털 전환에 늦었다. 일본의 관료와 정치는 경직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나는 부동산 폭락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과 한국은 매우 닮아있다. 출산율, 고령화, 부동산 가격 상승, 부동산 투자 열풍은 그 시절 일본과 비슷하다. 더 심한 지표도 많다. 일본은 그나마 내수가 있지만 한국 경제는 수출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대한민국 출산율은 0명대로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국 트럼프 당선인은 무역 적자국에게 제재를 예고했다. (한국은 미국 무역수지 적자 6위다) 일본은 달러라도 왕창 보유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엔화는 기축통화지만 원화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중국의 기술력이 급속도로 올라오고 있어 국내 기업이 위태롭다. 성장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앞으로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여 금리를 마구 내릴 수도 없다. 사람들의 부동산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근로 의욕은 떨어뜨리고 있다. 부실 PF는 경매에 올라오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도 혼란스러운 실정이다. 폭락을 떠나서 주의를 요하는 시점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답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일본이라는 선례가 있으니 미리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최근 외국계 기업이 한국 월세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내 집주인은 미국인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한국의 저성장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낮아진 월급을 모아서 미국인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