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독후감 (알베르 카뮈, 부조리 철학 시리즈1)
고향에 가기 위해 청량리 역으로 왔다.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카페에 왔다. 가사를 알 수 없는 팝송이 나오고 있다. 카페 벽면에는 직원들이 홍보 포스터를 붙이느라 분주하다. 포스터에는 초코 소금빵 사진과 두바이 소금빵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다. 바로 옆에 붙이고 있는 포스터에는 두바이 토스트라고 써져 있다. 줄자로 포스터 간 간격을 재가며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청량리역 상점가 쿠키 가게에서 두바이 쫀득 쿠키를 판다길래 사서 주위에 선물로 돌리려고 봤는데 품절이란다. 이 두쫀쿠 대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특별한 먹을거리가 생기면 회사 부서원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눠줄 때마다 반응이 좋다. 이럴 때 보면 세상은 복잡하기도 하지만 정말 간단한 면도 있다. 과자 몇 개로 유대감을 쌓을 수 있고, 그 유대감이 내 성과나 근면함보다 더 영향력이 클 때가 있다.
최근 회사 승진 결과가 나왔다. 나는 승진 시점이 아니었지만 주변의 선배들 중 승진에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봤다. 그중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주변 인물들과 잘 지냈는데 승진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업무적 성과도 없고 주위 사람들도 싫어하지만 윗사람에게 잘 보인 이유로 승진한 사람도 있다.
물론 직장 생활에서 승진 결정권자에게 잘 보이는 것은 필수다. 하지만 업무를 잘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좀 더 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실함이나 배려심 같은 성품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며 그건 어쩌면 이상적인 바람임을 점점 느낀다. 이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나는 이 지점에서 괴리를 느낀다. 부조리를 느낀다.
부조리 : 인생의 의의와 현대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
표준국어대사전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사실 내가 생각한 이상은 애초부터 없었다. 승진결정권자도 사람이며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사람을 승진시킨다.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해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기 팀 동료들과 잘 지내는 사람보다는 자기한테 와서 젊어 보인다는 칭찬 한마디 건네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갈 것이다. 본인을 어필하지 않는데도 관리자가 모든 것을 알아주고 판단해 주는 상황은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며. 현실에서는 드문 이야기다.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이상은 인간이 만든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상들(가치, 선과 악, 도덕, 예의, 매너)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또 나라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종교, 지역, 개인에 따라 다르다.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가치일 뿐이다. 현대인은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중세인은 돈을 신으로 모시는 현대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기준을 믿고 따르며 살아간다. 결혼은 언제 해야 한다. 한 직장을 평생 다녀야 한다. 공무원이 최고다. 이런 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당연하게 통용됐지만 요즘은 사라진 기준들이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고 믿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변해버렸다. 세상의 기준들은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가치를 따르며 살아가야 할까? 여기서부터는 당신의 선택이다. 세상일은 모두 무의미하다며 낙담에 빠져 인생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세상에 정해져 있는 가치가 아닌 자신의 가치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치를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면 나도 그 기준을 만들 자격이 있다. 꼭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만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는 비주류를 고수하라는 말도 아니고, '남을 배려하라'와 같은 도덕적 가치를 버리라는 말도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이 정해놓은 대로 움직이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갇혀 살 필요가 없다.
또 남을 자신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은 기존의 기준들로 공식화되어있다. 사람들은 그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 취급하고 공격한다. 또 모호한 것보다는 명확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을 공식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대중은 자극적인 유튜브나 기사를 보고 사실을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사실들을 엮어서 정황을 만들고 우연 속에서 인과를 창조한다.
청량리역 두바이 시리즈를 본 다음날 고향의 카페에 와서 글을 이어서 쓴다. 마찬가지로 가사를 알 수 없는 팝송이 흘러나온다. 생크림이 올라가 있는 치즈케익이 맛있다. 흰색 인테리어의 카페의 창 밖으로는 넓은 논 뷰가 펼쳐져 있다. 사람이 쫙 펼쳐진 넓은 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이 피식자였던 시절 포식자들을 피하기 좋은 넓은 곳을 선호하는 본능이 남아서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포식자 걱정을 안 해도 되는 현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현대의 부조리를 전한다.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주인공 뫼르소가 겪는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어머니의 죽음부터 살인까지 뫼르소의 입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살인에 대한 재판이 펼쳐진다. 뫼르소는 세상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판사, 검사, 배심원 심지어 변호사까지 공식을 따르지 않는 뫼르소를 공격한다. 우연을 엮어서 공식에 끼워 맞추고 논리를 창작한다.
카뮈는 이 지점을 비판한다.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뫼르소를 등장시킨다. 그는 언제나 솔직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식으로 가득 찬 재판장을 등장시킨다. 재판장은 추정과 과장이 난무한다. 현대의 부조리를 이 재판장에 빗대어 비판한다.
우리는 현대의 부조리 속에 살아간다. 어쨌거나 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뫼르소만큼 솔직하게 살아갈 순 없다 (물론 포식자에게 쫓기는 것보단 조금 덜 솔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낫겠지).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또 남들을 함부로 재판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한 없이 솔직하고 남을 재판하지 않는 뫼르소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