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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Nov 12. 2017

이태원에서 동부이촌동까지

걷기 좋아하는 이상무가 물었다. "오늘 안 갑니까?" 쉴까도 했는데 이참에 나섰다. 김시덕 선생을 따라 걷는 길. 오늘은 이태원이다. 8100번. 미금역에서 타고 연락했다. 이상무는 수내역 스타벅스에 있다. 버스에 좌석이 몇 안 남았다. 이제 좌회전하면 정류장. 아뿔싸 이상무가 횡단보도를 못 건넜다. 내가 내렸다. 이상무가 뛰어왔지만 버스는 떠났다. 조금 기다려 8101번. 안전벨트 매고 눈을 감았다 뜨니, 버스가 한남대교로 안가고 빠져나왔다. 맞아, 이 버스는 신논현역으로 다시 분당행이다. 급히 내려 다른 버스를 타고 이태원역에 도착. 서울살이 20년이 넘었는데 이태까지 처음이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외국인 같다. 역시 이태원이다.



부자가 많다는 한남동. 이슬람 사원 있는 동네 쪽으로 걸었다. 한남대교를 건너 남산쪽으로 갈 때 보던 빽빽한 집들의 언덕. 거기서 고개 돌리면 남쪽으로 한강, 북쪽으로 남산이 보인다. 육거리에 도깨비 시장, 오래된 문체의 간판, 건물, 어지러운 전봇대와 전깃줄. 꾸불꾸불 골목에 좁은 비탈길. 80년대에 멈춘 것 같다. 여기도 처음에는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동네인데, 세월이 흘렀다. 뉴타운이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영화 촬영지 하나가 사라지겠다 싶다. 대만 지펑구,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아기자기하게 자생할 방법은 없을까. 이미 그 동네를 떠난 집주인들이 원치 않겠지만.


언덕을 내려 굴다리 지나면 한강이다. 이쪽엔 고수부지가 좁다. 자전거 도로와 농구장 하나가 겨우 있다. 거기에 옆으로 뻗은 가지 하나를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500년. 민비 성황당이다. 정성 들이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여기서 굿도 한다. 소음으로 민원이 많자 징은 안 쓴다고 한다.  



보광동 골목길을 따라 서빙고로 갔다. 보광동이 예전엔 종점이었다. 사대문에서 보면 한강까지 왔으니 끝이긴 하다. 제갈공명을 모시는 무후묘, 마을을 지키는 제당(부군당)도 있다. 이성계와 강씨 부인 그림이 있다 하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문화재라 하긴엔 무시무시한 수사 분실도 있었다. 서빙고 호텔이라 불렀다는 그곳은 이제 아파트. 비석만 하나 남았다. "방첩인들의 땀과 혼"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고 되어 있다.


이촌동 아파트 단지에 커다란 굴뚝이 있다. 높은 분이 강북대로를 만들고나서 지나가며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있으면 좋겠다 했다. 아파트나 빌딩을 높이 지을 실력도 형편도 안돼 굴뚝만 하나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시간을 걷고 배가 고팠다. 아무렇게나 들어간 가게, 라멘이 좋았다. 동부 이촌동 맛집이 많다더니 과연이다.


걸으며 보면, 생각도 못한 것들을 만난다. 옛날 고향, 좁은 골목길이 서울 언덕에도 있다. 예전에 집이 드문드문할 때는 자연과 어우러졌을 거다. 집들만 빽빽해진 지금은 제당, 보광사가 쌩뚱맞다. 느리게 시간을 보낸 마을이 최첨단으로 개발될 거다. 부디 멋있게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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