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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Apr 14. 2018

유럽은 처음이지?


97년 결혼하고 마누라와 처음 둘만 여행. 애들은 두고 갔다. 시차 때문인가, 초저녁에 졸리고 오밤중에 말똥말똥하다. 세빗 말고는 유럽은 처음. 로마, 파리도 당연히 처음. 그래서 그런지 당황스러운 일들이 많았다.여행의 재미,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잠도 안 오는데 그것들을 한번 정리했다.


여행사에서 픽업서비스를 어렌지 해줬다. 공항에서 호텔, 호텔에서 공항까지. 로마, 파리 총 4차례. 한밤에 로마에 내렸다. 수십 명 픽업 사인보드에서 내 이름을 찾았지만 없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확인했다. 두번, 세번. 없었다. 택시 찾느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다. "노땡큐". 여행안내서에 나와서 오른쪽에 뭐가 있다고 해서, 거기가 어딘지 안내소에 물어 갔다. 거기도 없었다. 돌아와 다시 확인했다. 전화했다. 영어를 선택하고, "1"를 누르고 계속 기계음만 나왔다. 다른 번호가 있었다. 내가 여기 Meeting #2 기둥 아래 있다고 했다. 지가 있는 쪽으로 오라고 했다. 아까 아무도 없었던 곳. 알았다 했다. 답답한 내가 가야지 뭐. 거기 "KO" 가 쓰인 갤럭시 탭이 보였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택시를 안타도 돼 다행이다. 일단 시작부터 크게 꼬이지 않아 안심이다. 구글맵을 켜고 제대로 가는지 얼핏 봤다. 콜로세움이 보였다. 마음이 놓였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는 자꾸 로그인하라고 했다. 포켓와이파이를 컸다. 잘 됐다. 좋아 좋아했는데, 뭘 자꾸 물었다. 가입하라고 하고, 아이디 묻고, 그러다 안됐다. 카톡으로 질문했다. 이렇게 해보라, 어떤 화면이 나오냐. 화면 몇 개를 캡처해서 보냈다. 7시간 시차, 투어시간, 물을 볼 시간도 짧았다. 이렇게 복잡하면 어떻게 사용하라는 거지. 1월에 일본에 갈 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나중 인천공항에 반납했다. 여직원이 그랬다. 전 그 회사 직원이 아니고요, 싹수없게 들리시겠지만, 유럽에서는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나갈 때 통신사 패밀리 데이터 로밍도 하길 잘 했다.


두 번째 밤. 추웠다. 난방이 안됐다. 데스크로 전화했다. 난방이 안된다. 에어컨디셔너가 고장 난 것 같다. 알았다. 한참 기다렸다. 다시 전화했다. 다른 사람이 받았다. 방에 문제가 있다. 아까 말했는데 좀 춥다. 알았다. 그렇게 두 시간을 기다렸다. 또 전화했다. 한참 있다가 똑똑. 키 큰 아저씨가 작은 온풍기를 가져왔다. 코드를 꽂았는데 모터가 돌아가지 않았다. 당황한 아저씨가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고 돌아갔다. 온풍기와 전열기를 가져왔다. 온풍기는 소리가 켰다. 전열기를 선택했다. 그동안 와이프는 한 번도 안 깨고 잘 자고 있었다. 그래 나만 고생하면 된다.


로마 관광을 잘하고 파리로. 픽업 아저씨도 10분 전에 호텔에 왔다. 리셉션에서 "KO"를 찾았다. 마음 졸이지 않고 유쾌하게 공항으로 갔다. 로마 3박인데, 사실상 2일이라 아쉬웠다. 넉넉하게 일찍 공항에 도착해 발권하러 갔다. 엉. 니 비행기는 취소됐어. 파리 공항 파업이야. 잘못 들었나. 뭔 소리지. 다음 비행기 티켓 줄 테니 내일 와. 짐은 그때 부쳐. 코너 돌아가면 아줌마가 호텔 안내해줄 거야.. 이런 이야기였다. 죈장. 비행기는 다음날 저녁이었다. 아줌마는 HEO(누구? 와이프가 허씨다), 2(일행이 몇 명인지), 더블룸 이렇게 썼다. 그때가 오전 10시, 한 시간 뒤에 호텔 방을 배정한다 했다. 11시다. 매니저가 호텔 알아보고 있다. 12시에 말해줄게 했다. 그사이 비행기 승객들이 공항에 속속 들어오고 붐비기 시작했다. 여행사 사장님께 알렸다. 파리에서 픽업도 조정하고, 호텔에 노쇼 아니라고 이야기하신다 했다. 난 옆에 앉은 아줌마와 토킹 했다. 이런 게 처음이라 좀 그렇다 했다. 아줌마 왈, 프랑스 스트라이크, 스튜피드. 로마 사시냐고 물었다. 로마에 살고 싶다고 했다. 12시에는 천천히 식사하고 오라 했다. 한층 올라가면 식당 있다. 비행기 티켓 보여주면 밥 줄거라 했다. 가보니 샌드위치만 됐다. 콜라는 내 돈으로 샀다. 다시 돌아와 기다렸다. 옆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 하고. 아줌마가 그랬다. 플로우다. 이게 유럽이다. 쩝. 한시 반쯤. 공항 바로 옆 힐튼은 방이 없단다. 한 번에 백개 넘는 방이 없겠지. 이름을 불렀다. 버스에 타란다. 긴장됐다. 한 삼십 분 갔다. 어느 한적한 시골, 별이 네 개 붙어 있었다. 하지만 방키는 옛날 콘도 키. 날이 화창한데, 마음은 흐렸다. 오후 시간도 많이 남았고, 비행기는 다음날 저녁이다. 결단은 빨리. 이제까지 잤던 테르미니역 호텔에 방이 있었다. 부킹닷컴으로 예약하고 가방을 끌고 프런트에 갔다. 여권 달라, 우리는 가겠다. 호텔 아줌마는 방은 이미 지불되었다. 그래도 갈 거냐. 그래 간다 했다.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택시 불러달라 했다. 걸어가면 된다, 가깝다 했다. 알았다. 나 간다고 나섰다. 구글맵을 켜고 가방을 끌고 갔다. 10분 걸렸다. 지하철 종점이었다. 테르미니까지 30분 걸렸다.


잘 잤다. 아침에 비가 왔다. 산책 갈 때 호텔 우산을 빌렸다. 꽤 무거웠다. 비가 그치는 듯했다. 스페인 광장 갈 때는 준비해 간 작은 우산을 챙겼다. 지하철에 내리는 데 비가 제법. 몽클 매장. 맘에 드는 패딩이 없었다. POMPI 티라미슈 먹었다. 커피도 한잔 하고 싶었지만 비가 제법. 운동화가 다 젖었다. 호텔로 철수. 신발이 하나뿐. 헤어 드라이로 말릴 수밖에. 이방은 드라이기가 고정형. 화장실에서 열심히 말리는 데 멈췄다. 과부하인가? 그것보다 낭패다. 신발은 아직도 물기가 그득한데. 한층을 내려가 데스크로 달려갔다. 헤어드라이기가 고장 났다. 방으로 갔다 줬다. 그때 보니 원래 있던 드라이기도 작동했다. 아싸. 2대로 와이프 신발과 동시에 말렸다.


테르미니역에서 기차로 공항에 갔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기차 티켓에 시간도 좌석번호가 없다. 원하는 기차에 아무데나 앉아라 했다. 공항에는 역이 몇 개냐? 하나냐? 하나다 했다. 헷갈리지 않아 좋다. 3시 조금 넘어 도착. T3로 신속하게 이동, 이동 중 비행 안내판을 봤다. 7시 파리행은 없었다. 항공사 안내원에게 물었다. 오늘은 갈 수 있는 거냐. 간다고 했다. 짐 부치려고 줄 섰다.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SVQ. 세르비아로 수학여행 가나 보다. 카운터에 보딩 티켓을 보여줬다. 4시에 다시 오란다. 7시 비행기는 아직 수속하지 않는다고. 아직은 어제 봤던 승객들이 안 보였다. 주위 가게를 돌다 줄을 섰다. 4시 넘었다. 짐 부치고 보안검사도 하고. 가만 보니 보딩 티켓에 게이트 넘버가 없었다. 비행 안내판에도 7시 파리는 아직 없었다. 안내를 찾았다. 게이트 넘버 확인을 부탁했다. 조회하더니 C11이라 했다. 면세점을 돌다 C11을 지나갔다. 다른 비행 안내가 있었다. 다시 다른 안내를 찾았다. C11을 확인했다. 맞다고 했다. 근데 왜 보드에는 없냐고 물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렇다고 했다. 무슨 10시 비행기도 잘 적혀있구먼. 어쨓던 안심하고 다시 쇼핑 모드. C11에 드디어 떴다. 7시가 아니고 8시로, 좀 있다 9시로. 2시간 연착. 캔슬보다는 양호하다.


올리 공항 도착. 픽업 언니가 나왔다. 남자와 같이 이었다. 역시 불란서, 애인인가 했다. 신참 교육이란다. 호텔로 출발. 친절한 프랑스 기사님 두 분은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계속 뒤돌아봤다. 어디서 왔냐, 어디 보러 가냐. 벨사이 보러 가라. 궁전이 좋다 했다. 벨사이는 어디지 생각하다 한국사람은 베르사유라고 말한다고 해줬다. 길가면서 저기가 노트르담, 여기가 라센, 루브르라고 알려줬다. 친절한 프랑스. 이제 도착했다 했다. 한데 다른 호텔. 가방을 끌고 옆으로 이동. 카운터에 통통한 아저씨가 있었다. 여권을 보여줬다. 방 없다 했다. 어제 왔어야 하는데 안 왔잖아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에이젼트가 호텔에 연락했다고 했다. 잘 살펴봐했다. 계속 투덜대다가 데스크 한쪽에 룸키와 메모지 세트를 봤다. "KO" 가 똑똑히 보였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카드키는 하나 더 달라고 쎄게 말했다. 두 개를 받아 들고 입장했다.


벨사이 궁전도 잘 봤다. 몽마르트르, 노트르담, 개선문, 에펠탑 잘 봤다. 하루를 날려 루브르를 못 간 게 아쉽지만, 로마를 더 본 걸로 위안했다. 루브르 앞 띌르흐 잔디밭에서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 라파예트 백화점. 그러고 나서 공항으로. 픽업 드라이버도 10분 전에 오고. 수속도 하고, 텍스 리턴도 잘 처리하고. 입장. 셀프 바에서 셀르드를 샀다. 자판기에서 1.5유로 하는 콜라가 여기선 4유로. 피곤해도 여기서 질 수는 없다. 사러 갔다. 라운지가 보였다. 내가 가진 카드로 입장할 수 있나 물었다. 그 카드는 다른 라운지라 했다. 계단 내려가서 돌아가면 있다. 오호 진짜 Free 라운지가 있었다. 와이프를 불러와야지. 한데 돌아갈 수가 없었다. 왔던 길은 헷갈리고 뻔히 보이는 계단은 이쪽에서는 갈 수 없었다. 한참을 돌다 안내에게 물었다. 나 게이트로 가야 한다고. 보안 검사하고 하고 가면 된다고. 여권과 보딩패스를 내가 가지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배드로 성당의 기도빨인가. 어쨓던 나를 버리지는 않는구나.  대신.. 무사히 마누라와 샐러드가 있는 곳으로. 왜 늦게 왔냐, 콜라는 안 샀나 는 소리를 들었다.


11시간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 소매치기 걱정으로 스트레스, 유럽은 처음이라 스트레스, 와이프랑 둘만 장장 8일을 잘 보낼 수 있을 까. 그런 시간이 다 지났다. 집으로. 미금역 가는 공항버스를 타고 판교 IC를 나왔다. 현대백화점 너도 반갑다 하는데 어어어 하는 소리와 꽝. 공항버스가 급정거하는 앞차를 받았다. 앞차 트렁크가 좀 구겨졌다. 기사님이 내려 앞차 운전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죄송하다 했다. 심하게 들이받은 건 아니라서 그렇게 집에 왔다.


끝까지 생각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 것들에 유럽 아줌마가 "Flow" "It's Europe" 했다. 크게 보면 "그것이 인생" 같다. 모든 일을 다 예상할 수는 없다. 그런 일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나한테 만은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불가능이다. 이번 여행에서 중간중간 어떤 때는 재미를 어떤 때는 어드벤처였던 그런 일에 좀 여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마누라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게 제일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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