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요일. 지인의 전화. 뭐라 뭐라 이야기했다. 정리하면 나에게 무슨 역할로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건데, 맥락이 좀 이상했다. 그가 좀 급하고 전달이 약하니까, 그냥 전화 달라고 했다. 직접 듣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연락이 왔다. 대학 산학협력 부서에서 투자 부분에 전문가 자문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멀다는 것. 오가다 들릴 상황이 아니다. 움직이는 쪽은 한나절이다.
다음 주 화요일 어떠냐, 올 수 없는지 물었다. 그날은 반대쪽 도시에 미팅. 어렵다 했다. 그럼 다음 주 금요일 서울에서 미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다음 주 월화수 중에 일정을 잡을 수 있는지?
당연히 금요일 서울 미팅 좋다 했다. 오신다니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만나야지 했는데. 한 시간 반 뒤. 다른 분들 일정이 안 맞아 어렵다 했다. 아, 나만 만나는 건 아니었구나.
그럼 그다음 주 화수가 좋고, 화요일이 더 좋다고 말씀드렸다. 30분 지나서, 화요일 1순위로 잡겠다는 대답이 왔다. 또 연락이 없다.
내가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미팅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안팎일 거다. 오전인지, 점심인지, 이른 오후인지, 좀 늦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라도 알면 다른 시간대는 뭐라도 정할 수 있는데.. 괜히 화수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이틀을 아무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다. 일정을 하나 잡을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수요일은 어렵게 되었다고 알려줬다. 대답이 바로 왔다. “수요일 13:30으로 일단 잡았다” 고. 아씨. 그럼 빨리 알려주지. 피해서 잡을 수 있었는데.
바빠서 깜박했나 이해하려고 했지만...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에, 하루를 다 비워서 방문을 해달라는 입장에, 게다가 일면식도 없는 초면에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내 일정을 다시 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줄 의사가 있다고 한 것인데, 사정이야 있겠지만 나는 아무 배려를 받지 못하는 느낌. 그렇게까지 도울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참석은 어렵다, 여러 분들과 조율한다고 수고하셨을 텐데 아쉽다, 혹 전화나 이멜로 여쭤볼 게 있으면 언제든 좋다고도 말씀드렸다. 역시 또 아무 대답이 없다. 6시간에 걸쳐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수년 전 힐링캠프 MC 한혜진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호의를 베풀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는 조심해하고 신경을 써주지만, 사람들이 내 호의는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어 당황스럽다”라고 했다.
호의를 가진 쪽이 약자가 되는 건 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