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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Feb 04. 2020

다 줘버려야 얻는 자유

2018.01 일본 가족 여행

몇 년 전 가족과 일본에 갔다. 재수 끝에 합격한 첫째를 축하하고 고2로 접어드는 둘째를 격려도 할 겸. 


그동안 가족여행은 계획도 내가, 실행도 내가, 가족들은 따라오기만 했다. 내가 경험도 있고, 준비나 인솔 통제하는 과정도 재미있고, 애들이 아직 어리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바꿔보기로 했다. 


나리타 공항 도착. 짐을 찾고 애들을 불렀다. 여행에서 쓸 돈을 나눠줬다. 맘대로 쓰라고 하면서 각자 5만 엔. 처음엔 감이 없었다. 환율을 찾아보고 둘째는 완전 깜놀. 그렇게 큰돈은 처음이었다. 진짜로 그렇게 해도 되냐고 되물었다. 된다, 이런 거 저런 거 사도 되냐, 해도 되냐 묻지 말고 알아서 해라 했다. 이번 개인 경비는 이걸로 끝이다. 남으면 돌아가서 용돈으로 주겠다 했다. 


첫째는 사고 싶었던 꼼** 니트를 몇 개 샀다. 둘째도 하고 싶은 걸 했다.  


이제 애들이 묻지 않고 사달라 조르지도 않았다. 스스로 정했다. 나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나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애들을 졸라서 얻어먹는 재미도 있었다.


돌아와서 둘째에게 물었다.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은 건 뭐였냐? 아빠가 공항에서 용돈을 나눠줄 때라 했다. 일단 반신반의했고, 또 자기가 쓰면 얼마나 쓰겠나, 만 몇천엔 정도라도 쓰겠나 싶었다 했다. 실제 둘째는 3만 몇천 엔을 썼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줬다. 


그다음은? 일본에서 다 사용했어야 했다는 거다. 같은 값이라 해도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걸 했어야 했는데 했다는 후회.


어차피 오랜만의 여행. 애들은 나에게 사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겠지. 또 다른 건 어떠냐, 비까비 않냐, 많지 않냐 실랑이도 있었을 거고. 용돈을 한 번에 주면서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왔다. 대신 애들에게 다 넘겼다. 스스로 선택해라.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이냐? 쇼핑이냐 디즈니냐. 뭘 살 거냐? 니트냐 모자냐. 정해진 예산안에 선택하는 경험도 던져줬다.  


둘째한테 난생처음 큰돈이었다. 뭐든지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을 거다. 세상 든든했겠지. 그런 느낌을 한번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돈이어야 할 거다. 


돌아와서 다 쓰지 못해 아쉬웠다니 그것도 소득이다. 같은 돈이라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거다.  


용돈은 애들을 제어하는 좋은 수단이다. 난 그걸 포기하면서 자유를 얻고 나만의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애들은 한차례 성장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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