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새내기 심사역의 무기

by 고병철

길가다 곳곳에 “유증상자” 진단법 안내문을 본다. 가끔 “유상증자” 로 읽는다. 일종의 직업병. 고급스럽게 “단어 우월 효과”, 단어를 인식할 때 개별 문자의 집합이 아닌 총체적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것. “중하요지 않고”을 익숙한 “중요하지 않고” 로 해석하는 뇌의 습관이다. 피식 웃으려는 마음 자체가 죄스러운 요즘이다.

얼마 전 나이 많은 심사역과 맥주 한잔 했다. 자기 영역에서 오랜 기간 내공을 수련했지만 이쪽은 신참이다. 열심히 딜 소싱해서 발표하지만 바로 깨진다. “난 아직 잘 모르니까”, “내 생각에도 이 부분 조사가 부족하니까” 로 스스로 약한 고리를 먼저 찾아 수긍해버린다. 마음속 한 곳에는 꼭 그런 것만 이야기하냐 섭섭함도 있고, 언제까지 수련해야 하나 답답함도 있다.

나이 든 새내기.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점잖은 성격도 한 몫한다.

투자는 정답이 없다. 실행하고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다. 투자(실행)에 대한 권한(티켓)을 받는 게 시작이다. 자존심으로, 점잖게 패배를 인정하다 하다 보면 나중에 뼈도 없다. 그때 내 말대로 투자했으면 대박이야, 니들이 반대했잖아, 이런 심리적 보상도 없다. 심사역은 일단 투자를 해야 한다.

심사위원 당신 이상으로 고민했다는 치졸한 자존심으로 무장하자. 당신이 그 위치에만 있을 뿐, 이 프로젝트는 내가 더 많이 안다고 죽기 살기로 덤벼야 상대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한다. 때로는 태도(의지)가 내용보다 중요하다. 건전한 오만, 내가 책임지고 만다는 무책임한 책임감. 이런 자신감이 새내기 심사역을 정글에서 홀로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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