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비대면 피칭이 대세다. 펀드 제안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라 한다. PPT를 띄우고, 스크립트에 맞춰 화면을 넘기는 모양새다. 목소리만 나와서 아쉬우면 발표자가 인사하는 영상을 앞부분에 넣는다. 화면을 나눠 한쪽엔 발표 모습을 넣기도 하고, 배경 음악을 깔기도 한다. 그럴수록 시간과 돈이 더 들어간다. 심사결과에 별 영향이 없다 하는 데도, 준비하는 자의 위안이다.
동영상 발표로 현장 발표 때의 긴장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아예 날로 먹는 건 아니다. 스크립트를 읽기만 하면 되는 데 뭐가 어려울까 쉽다. 막상 해보면 발표시간이 참 길다. 그동안 하나도 틀리지 않기가 너무 어렵다. NG가 나고 또 나고, 십 수 번 해야 끝난다. 만족스럽거나 아니면 그 정도에서 포기하거나.
그런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눈보다 귀의 역할이 더 커졌다. 면전에서 발표하면 예의상으로라도 발표자와 화면을 보기라도 했다. 동영상 발표는 체스처도 없고 아이콘텍도 없다. 포인터를 쓸 수도 없다. 결론은 스크립트, 즉 콘텐츠와 전달력에 달렸다.
그런데 머릿속 생각 만으로는 완벽한 스크립트는 없다. 입으로 발표하는 액션과 차이가 컸다. 마의 구간, 틀린 데 또 틀리고, 꼬인 데 또 꼬였다. 내 몸, 내 입, 내 혀에 맞는 말과 문장으로 고쳤다. 한 번 두 번 실전 녹음을 하면서 만족할 만한 완성본이 나올 때, 스크립트 수정도 끝난다.
발표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 주어진 시간을 넘겨서도 안되지만 너무 짧아도 좋지 않다. 적당한 스크립트 길이는 얼마일까? 평소 말하는 속도에 따라 발음해야 할 단어 수가 대략 결정된다. 스크립트 1차 버전을 끝까지 읽어보니 16분, 1,400 단어가 조금 넘었다. 몇 문장을 빼고 수정하고 1,314 단어. 거의 14분 50초.
이젠 단어와 문장. 보통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해봐" 하면 만연체, 문어체로 쓴다. 거기에 전문용어를 남발하면 지루하다. 좋은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데 어려우면 끝이다. 일반 대중 강연은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라 한다. TED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 언어가 기준이다. 엘런 머스크는 복잡한 태양전지판을 설명하는 데, 6.3년 교육 수준의 언어로 했다 한다. 왜 설득의 대가인 지 알 만하다. 어설픈 사람이 어려운 전문용어의 권위에 기댄다. 구어체, 말하듯이 쓰는 연습, 스크립트를 만들 때 꼭 생각해야 한다.
다음은 말하는 속도. 결론은 천천히 보다는 조금 빠르게. 안단테.
현장 발표에서는 압박감으로 여유가 없다. 혹 몇 문장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 나도 모르게 말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동영상 발표에서는 그런 실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금 빠르게 말하는 게 좋다. 역동감을 준다. 듣는 이의 몰입을 도와준다. 편안한 분위기인 오디오북에서는 분당 150~160개 (영어) 단어를 말한다. 반면 주제를 전달하는 TED 스피치는 분당 190개 단어를 말한다 한다.
비대면 IR이 늘어난다. 피칭 동영상 만들 때 참고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