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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Nov 04. 2020

(22) 사람과 숫자 사이

2020.11.04 

도착했습니다. 창업자가 카톡을 보냈다. 

지난 중에 보려다 일정이 꼬여 이번 주로 다시 잡았다.
 

표정이 밝다. 늘 맑았다. 30 초반 깨끗한 피부에 눈이 크다.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조금은 눈치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편하다. 고객에게 양질의 제품을 추천하고 판매하고 있다. 


어제 들었다, 엑셀러레이터가 수천만 원 투자하기로 했다고. 축하한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고맙다고 했다. 내가 코멘트해 준 것들이 투자자한테 공감을 많이 받았다고. 

... 

처음 만난 건 쌀쌀한 봄이었다. IR 자료 코칭을 해달라고 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정보가 많았다. 너무 많았다.
 

뭐가 중요한 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좀 간단하게 바꾸는 게 어떻겠냐 이야기했다. 


여름에도 보고, 가을에도 만났다.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었다. 


고객 반응이 좋다고 했다. 한데 조금 있던 자금도 떨어지고. 자금만 있으면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물었다. 


솔직히 이야기했다. 잘 될 것 같지 않다.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우선 서비스 경쟁력을 나타내는 첫 번째 지표는 무언지 물어봤다. 수용도라 했다. 추천한 제품 중 고객이 몇 개를 선택하는가, 비율이라고 했다. 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그 결과는 어떤지 물었다.


더 중요한 질문을 했다. 고객이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근거는 무언지 다시 물었다. 고객이 늘고 있다 했다. 


다시 생각해보자 했다. 호기심이라도 한 번은 해볼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없으면 정말 아쉬워할 고객, 그분들이 충성고객이고 서비스 기반이다. 그분들이 있는가? 그런 고객을 더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서비스는 개선, 피보팅 해야 한다. 종종 생각지 못한 고객 니즈가 발견될 때가 있다. 얻어걸린 거다. 재수 좋은 경우다. 


그런 고객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고객은 조용히 행동할 뿐 창업자에게 코칭하지 않는다. 고객의 행동으로 파악해야 한다. 충성 고객은 어떤 행동을 할까? 다시 구매하고 주위에 추천할 거다. 그런 고객이 있나?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모르겠다 했다. 


고객을 찾아가라 했다. 전화를 하던, 직접 찾아가던 그런 충성 고객 후보군들의 소리를 들어라고 했다. 더 많이 구매하고, 더 많이 추천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기획자의 머리가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시장에서 검증받고 시장에서 배워야 한다. 시장이 기획자다.


이제 투자자를 생각해보자. 현재 투자자한테 자랑할 만한 어떤 숫자라도 있는가? 없다. 당연히 없다.  


그래도 이 단계에서 투자하는 투자자는 무엇을 보고 결정할까? 흔히 사람이라 한다. 그건 성공 경험이 있는 연쇄 창업자 거나 소문난 수십 년 경험의 베테랑이라면 가능하다.  


사람도 아니고,  숫자로 넘어간 단계도 아니라면.. 그 사이엔 창업자의 열정이 키다.
 

고객을 잘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핵심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가? 그래서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 그 과정에서 파악한 현장 지식, 그걸 적용한 업그레이드 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라 말했다. 그렇게 쌓은 암묵지, 산지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갖춰진 환경에서 똑똑한 사람은 찾기 쉽다.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우직한 사람은 드물다. 초기 단계 젊은 창업자 투자는 그런 노력이 의미 있고 공감한다는 의미다. 

....

그렇게 정리한 것들이 이번 투자자 미팅에서 잘 통했다는 거다. 


얼마간의 자금으로 몇 달을 더 확보했는 데, 앞으로 무얼 해야 할 건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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