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원들 연봉은 다 계약을 했는데, 자기 급여는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 가 물어왔다. 웃기는 했지만, 고민해야 할 걸 고민할 줄 아는구나 생각했다.
주식회사는 대표를 포함한 이사의 보수를 정관에 정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정한다. 주주들이 “경영"이라는 일을 맡겼으니 그 대가도 주주들이 정하고 준다. (실제는 주총에서 보수한도만 정하고 이사회나 대표이사에 위임한다)
그럼, 임원퇴직금은? 퇴직금도 근로 대가다. 한데, 주총에서 금년 지급액을 확정할 수가 없다. 누가 퇴직할지, 언제 퇴직할지 모른다. 포괄해서 한도를 정하자니 그건 너무 크다. 그래서 주총에서 “임원퇴직금 지급규정"을 승인받아놓고, 퇴직자가 나오면 그 규정에 따라 지급한다.
간단해 보인다. 한데, 이 안건으로 격렬하게, 서로 절실하게 논의했던 주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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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는 전년도 매출 68억, 영업익 13억에서 매출 381억, 영업익 91억으로 상승했다. 아이템이 히트했다. 주관사 선정해서 상장을 착착 준비했다. 임원퇴직금 지급규정이 없는 걸 발견하고, 주총에서 승인을 요청했다. 한데, 내용이….
퇴직금의 주요 산식은 ( 직전 3개월 평균 급여 * 근속연수 * 지급률 )이었다. 지급률은 재임기간에 따라 구간별로 상승했다. 2,3,4,5,,,12년 이상이면 6이었다. 소급 적용되었다. 퇴직금의 50% 까지 특별퇴직금으로 추가 지급할 수도 있었다.
창업한 지 7년이 지났고 처음부터 사장님은 사장님이었다. 창업 20년이면 퇴직금으로만 최대 180개월치 월급을 가져간다. 15년 치 연봉이다.
이건 황금낙하산.
4차례 투자한 사이지만, 이건 찬성하기 어려웠다. 대표님은 수차례 증자로 지분이 작아졌고, 개고생 한 대가라고 하셨지만,,, 사장님은 전문경영인이 아닌 특수관계인 포함해 지분 20% 가까운 최대주주였다. 시총이 높아 평가액도 엄청날 것이고, 경영권 프리미엄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팽팽했다. 최대한 노력한 목소리, 떨림, 약간 일그러지는 얼굴.
주총을 정회하고, 간담회로 돌아섰다. 끝장 토론.
IPO를 앞두고 어느 쪽도 파투 낼 수는 없었다. 기관주주들은 상장 진행을 위해 일단 찬성하기로 했다. 회사는 주관사의 자문을 받아 퇴직금 규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장외에서 한때 시총 1,600억을 찍었고, 공모 시총 1,000억으로 한 번에 상장되었다. 1,000억이면 스타기업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당시 일부 상장기업들은 적대적 M&A 에 대비한다며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했다. 당국은 상장 전에 도입하는 건,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고, 상장 심의를 불허했다. 상장한 후에 하라고 했다. 그 후 이 지침이 철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지금은 퇴직금 지급률이 1이다. 그냥 1로 한다.
각종 규정, 절차, 암묵적 관행은 시장의 우여곡절을 촘촘히 반영한 것이다.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그때는 이유가 있었고, 기억을 못 할 뿐이다. 이유를 알면 이해하기도 쉽다.
규정과 절차를 지키지만 말고, 이해도 하자. 그래야, 더 잘 지킬 수 있고, 풀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풀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