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버티려면 집중

by 고병철


벤처창업이 할당같이 느껴지던 시절, 사장님은 국책연구소 광학분야에서 일하셨다. 당시 CD-ROM, DVD 등 광저장 장치가 대중화되었다. 부품 전문 대기업 계열사는 광픽업 분야에서 글로벌 4위였다. 사장님은 광픽업에 들어가는 부품을 개발해, 일본 업체와 경쟁했다. 특별하지는 않았는지, 가격이 매년 인하되었다. 이익은 나중이고, 물량을 뺏기지 않는 게 급선무 했다.


에니콜에 카메라가 붙었다. 처음엔 화소가 낮았다. 그래도, 반응이 좋았다. 장난감 같던 카메라에 손 떨림 방지 기능, 오토포커싱 등 점점 진짜 카메라가 되어 간다. “모아레” 같은 노이즈를 제거하는 이미지 처리가 필요하다. 이렇게 예측되었다. 문제는 언제? 시장을 리드하는 핸드폰 메이커의 정책. 2차 벤더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사장님은 승부를 걸었다. 이미지 처리 필터를 개발하기로. 일본에서 중고 장비를 샀다. 협력, A/S를 빙자해 어깨너머로 배웠다. 술도 엄청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고치고 고쳤다. 10만 클래스 클린룸도 만들었다. 공장도 증축, 캐파를 확보했다. 매출 46억 인 회사가, 기계, 시설, 토지, 공장에 148억을 썼다. 영업이익이 안나도, 이자는 꼬박꼬박. 부채비율 300%, CFO는 은행에서 살았다. 이제는 동남풍이 불어줘야 한다. 사장님의 입술은 타들어갔다. 여름 앞두고 반짝했는데,,,


휴가철 지나면서 반응이 왔다. 주문이 밀려왔다. 살았다. 잭팟.


웨이퍼에 필터링 패턴 새기고, 정해진 크기로 잘랐다. 원판 한 장이 4,500원, 347개가 나왔다. 개당 판매가 200원. 정말 남는 장사다. 고민은 수율! 자르면서 파티클이 생긴다. 초음파 세척을 하려니, 시설장치가 또 엄청나다. 때로는 사람이 답이다. 전수 검사했다. 골라냈다. 불량품은 군말 없이 교환해줬다. 독점이라 좀 편했다. 그렇게 공장은 풀가동되었다. 애는 태웠지만, 승부수가 통했다.


준비된 성공으로, 촉망받는 기업으로 IPO 되었다. 전쟁 같던 시절이 끝났나 싶었다. 자문위원 모시고, 시스템 만들고, 리스크 관리하고, 비전도 선포했다. 안 통했다. 느렸고, 되는 게 없었다. 그사이, 독점 약발이 다해갔다.


신규사업이 필요했다. 사장님은 또다시 승부수를 꺼 냈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세 가지. 차세대 이미지 필터를 준비하고, 러시아 기술로 도금사업을 시작했다. 태블릿을 겨냥해 강화유리도 만들었다.


처음 해 보는 도금사업에 땅 사고 공장 짓는 데 백수십억이 들어갔다. 고스란히 망했다. 강화유리는 싼 인건비 찾아서 중국으로 갔다. 어차피 수율이 낮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했다. 모토로라, 노키아도 다녀갔다. 6개월 이면 오더가 올 것이라 했는데, 2년이 지났다. 버티기엔 벌린 게 너무 컸다. 회사를 넘겨야 했다.


무리였다. 회사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사장님도 분산되었다. 만만한 사업이 없었다. 어느 곳에도 집중이 안되었다.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이사회는 아무 소용없었다. 동네에서 오랜만에 상장했던 그 명성은, 사업의 스케일만 크게 만들었다. 땅을 사며 부채는 늘어나고, 신규사업을 위해 투자는 계속되었다. 한번 방향이 정해지자 가속화되었다.


지나고 나니 아쉬웠다. 비록 남의 손에서지만, 두 사업은 잘되었다. 도금에만 손 안됐어도.. CFO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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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는 자신도 모르는 운이 작용한다. 사업의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첫 번째 행운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운은 때맞춰 오지 않는다. 포기하기 직전에야 온다. 그래서, 충분히 오랫동안, 버텨야 한다. 핵심으로 좁혀, 집중해야 한다. 버틸 수 없으면 행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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