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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Jan 23. 2022

180. 심사역도 지구인

2022.01.22

창업자를 만났다. 일상이다.


사업 내용을 들었다. 한 삼십 분. 장표는 사십 장 정도. 복잡한 이해관계, 고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듣는 데 좀 힘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사업 열심히 하신다. 지금도 무척 애를 쓰시는 데 이것저것 헝클어져 실마리를 못 잡겠다. 그러게요. 제 대학 친구 VC들도 이해가 어렵다네요. 몇 만났던 분들은 먼저 VC 언어를 배우고 오셔라 했어요. 머리로는 이해되는 데 하다 보면 애라 내 맘대로 돼요.


VC 언어가 따로 있나요. 에스페란토어를 쓰지도 제주도 감수꽝을 쓰지도 않는데. 쉽지 않다는 말이겠죠.


대표님은 투자자와 첫 만남에서 어떤 기대가 있나요. 구체적으로는…. 투자를 해줬으면 한다는.  그럼 소개팅할 때는 첫날 결혼까지 결정하나요? 아니죠. 소개팅의 결과물은 애프터죠. 다음 만남이 다음다음으로 가잖아요. 호감을 주는 거죠. 그런 자리에도 매출처에 이야기하듯 하이퀄리티 단어만 이어서 버벅대며 말하면 어떨까요. 잘 모르는 데 지루하잖아요. 같은 업계 아니면요.


재미있는 분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죠.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낭패도 있었다. 사업의 예를 들어주는 거죠. 그럼 전체 틀이 어렴풋 잡히면 이해가 쉽죠.


모 매출처 말고 그냥 실명을. 유통업체보다 이마트. 카페는 스벅. 그럼 상대가 훅 당겨와요. 들어본 회사니까요. 아 그 회사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여기에 이런 일을 하시는군요. 아는 것에 아는 것을 추가하긴 쉬워요. 바닥을 단디 다지는 거예요. 상대에게 "니가 다 아는 거에서 이야기 시작하는 거다. 여기에 좀만 관심 가지면 내 사업 다 아는 거다. 큰 품 들지 않는다." 하는 거죠.


투자는 선택지 중에 고르는 거. 자기가  아는 델 좋아하죠. 모르면 손이 안 나가요. 알면 결정하고 (하든 안 하든) 모르면 제쳐놓고 미루고.


제일 쉬운 예를 찾으시죠. 그것도 모르는 분은 제쳐놓으면 됩니다. 당신이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줄 세울 수 있으면 이런 수고 할 필요 없지만요. 그때까진 눈에 잘 띄는 미끼를 만들어 보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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