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습도가 높아지면 벌레들의 날개가 무거워진다. 날개 짓이 힘들어져, 높이 날지 못한다. 제비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낮게 날며 배를 불린다. 멀리서 보면 작은 벌레는 안 보이고, 제비만 보인다. 그래서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올 징조라고 한다.
일에는 전조가 있다. 그럼, 벤처기업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시그널은 무얼까? 그중 하나는 인력의 이탈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다. 임원의 이탈은 중대 사건이다.
….
핸드폰이 울렸다. 투자업체의 상무님이었다. 한번 보자고 하신다. 감이 좋지 않았다.
그 회사 사장님은 엔지니어로, 연구 개발, 생산에 강하셨다. 특정 부품 사이에 정확한 간극을 두어야 했다. 이제까지 별도의 모듈로 조립했던 걸, 자체 설비로 하나의 공정으로 해결했다. 전자가 균일하게 도포된 구리 동판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사 왔는데, 반도체 공정을 적용해, 이 소재도 자체 생산했다. 제품은 얇고, 가볍고, 튼튼하고, 저렴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잘 몰랐고, 피해의식도 있었다. 의심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는 어설프게 알아서 문제였다.
상무님이 커버했다. 투자유치, 주주관계, 경영관리, 직원 관리, 사실상 부사장이었다. 구매처의 급락한 사양 변경으로 생긴 불용재고도 처리하고, 맞춤형 영업 전문가를 찾아서 거래처도 뚫었다. 그가 사장님과 싸워서 짐을 싸면, 집까지 찾아가 다시 데리고 왔다. 제품 경쟁력을 확신했고, 매출이 200억을 넘어섰다. 300억만 넘기면 대박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최근 성장이 좀 주춤하긴 했는데,,, 이제 그만두신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라고 하신다. 이제 대박은 아니라고만 하고, 그동안 서로 고마웠다고, 수고하셨다고 했다. 온 생각이 들었다. CB 만기 때 일부 매각해서, 투자원금을 일단 건진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장님은 시스템이 잡혀서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적은 더, 더 나빠졌다. 악성 재고는 더 많이 나왔고, 손실은 더 커졌다.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회사를 굿 컴퍼니, 배드 컴퍼니로 분리했다. 한쪽은 청산하고, 한쪽은 상징적인 가격으로 그냥 팔았다. 상무님이 떠난 후 1년 여 동안 벌어진 일이다.
…..
벤처기업 성장의 한 측면은 인력이다. 성장하면 늘어난다. 좋은 인재들이 찾아온다. 반대로, 인력이 이탈하는 건 사건이다. 나가는 당사자도, 회사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분명 뭔가 일이 발생했다. 중요한 분이 나가는데, 하찮은 직원이 퇴직하듯 되는 계기가 있다. 이해관계가 달라졌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사의 미래를 판단했을 것이다. 투자업체를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경고등이다. 재무, 관리, 경영 부분 임원 이탈은 심각하다. 회사 전체를 볼 수 있는 분의 결정이다. 암시하는 바가 있다.
무슨 일이던, 갑자기 나타나는 일은 없다. 투자기업마다, 산업마다, 상황마다, 사건을 연결하는 실마리들이 있다. 이런 경고를 몰랐고, 무시했을 뿐이다.
벌레가 낮게 날 때는 이유가 있다. 낮게 나는 제비를 보고는 알아차려야 한다. 외양간을 살피고, 수리해야 한다. 드러났을 때는 좀 늦었다.
심사역은 경험할수록 자신만의 걱정이 많다. 미리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기우이기를 바란다. 업체를 방문하면 사무실 구석구석을 살핀다. 의자는 튼튼한지, 데스크는 잘 정리되어 있는지, 고장 난 PC가 방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임직원들 안색은 좋은지.. 사무실에 혹 벌레가 낮게 날고 있나, 제비가 있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