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역은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고, 가치를 높여, 그 주식을 판다. 차액이 크면 대박투자다.
미래의 가치를 먼저 보고, 그것을 만드는 창업자를 찾고, 그를 만나기 위해 네트워킹을 한다. 선뜻 동의하지 않는 투심 위원들도 설득해야 한다. 한건 한건, 어렵게 투자한 업체 중 몇 개가, 수년이 지나서, 상장심사를 통과한다. 매각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투자업체가 상장된다는 건 기쁨이다. 보람이다. 성과다. 이제 팔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늘 쉽지 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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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야구가 한창이던 어느 10월, 소재업체에 Series A 투자를 했다. 다음 해 봄 Series B 투자를 유치하고, 그다음 해 11월에 상장했다. 심사보고서보다 높은 성장이었다. 대박이었다. 투자에서 상장까지 2년 1개월, 765일 걸렸다.
기다리던 상장일. 시초가는 장외가보다 낮았다. 100만 주가 거래되었다. 다음날 주가는 흘러내렸고, 50만 주 정도가 거래되더니, 한주가 지나자 6만 주로 줄었다. 팔아야 하는데, 계좌에 주식이 없었다.
상장 당일 우선주 전환 신청을 했다. 11일 만에 보통주가 입고되었다. 거래량은 하루 2만 주. 한 달이 지나자 5천 주가 되었다. 보호예수 된 물량도 해제되었지만 막막했다.
매일 100주라도 팔아볼까. 1년이면 될까. 안된다. 보유주식 63만 주, 지분율 12%가 넘었다. 지분 5% 이상인 대주주는 지분이 변동되면 공시해야 한다. 10% 이상이면 더 엄격하다. 몇 번을 공시해야 할지 모른다. 빠트리기라도 하면, 금감원 제재가 엄중하다. 당시 행정부담이 너무 컸다.
매일 거래량을 봤다. 무상증자도 소용없었다. 실적까지 정체되어, 시장에서 소외되었다. 최고가 대비 30% 하락했다. 내규상 로스컷 해야 하지만 할 수도 없다. 분기마다 의미 없는 로스컷 연기 신청서만 제출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났다.
봄이 왔다. 실적도 상승하며 조금씩 관심을 모았다. 10만 주 까지 거래량이 늘었다. 블록세일로 공시부담도 조금은 벗어났다. 거의 매일 팔았다. 거래량이 줄면 조금만 팔았다. 거래량 대비 비율을 유지했다. 상장 후 2년 6개월 만에 매각 완료했다. 전체 투자기간 4년 7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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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의 주가를 결정하는 세 요소가 있다. 기업의 실적, 밸류에이션, 수급. 서로 연관되어 있다. 실적이 성장세면 PER도 높아진다. 서로 사려고 하면 주가는 더 올라간다.
신규 상장된 벤처는 늘 수급이 문제다. 벤처캐피털은 일방적인 매도세력이다. 주식을 빌려 팔 수도, 살 수도 없다. 이 물량이 정리되어야 수급의 판이 짜인다. 그전까지는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 아니다.
사실, 상장심사 청구 전에 보통주로 전환할 까 고민했었다. 만약, 상장 초기 거래량이 있을 때, 일부라도 털었다면, 이후 수급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혹 심사에 떨어질까, 나중에 안전하게 전환하기로 한 게 실수였다. 상장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아팠다. 기대 모았던 비범한 투자는 중박이 되었다.
리스크-프리 하려다 리스크를 더 키웠다. 시의적절한 결정을 못한 것이 리스크였다. 투자자가 적절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비싸게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