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동료가 4년 전에 투자한 업체를 담당하게 되었다. 4월이었다. 업체의 나이 많은 상무는 대뜸 빨리 입금해 달라고 했다. 돈이 떨어져 가니 주주가 당연히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헐. 사장님께서는 신제품이 기대되는데, 자금이 급하다고 하셨다.
아는 심사역 두 분에게 던졌다. 또 다른 심사역, 이렇게 세명이 검토를 시작했다. 자료를 보내고, QnA 하고, 창원으로 내려가 중요한 거래처도 만났다. 모두 투자하겠다고 했다. 15억, 10억, 5억... KTB가 5억, 다른 기존 주주가 3억. 5개 기관총 38억. 그러자 이제까지 조용하던 나머지 기관 주주가 손을 들었다. 신규 기관이 2억을 양보했다.
이렇게 6개 기관과 투자조건을 협의했다. 조율은 나의 몫이었다. 전화, 메일, 미팅. 전화, 전화, 메일, 메일, 메일, 미팅... 결국 만들어냈다. 한숨을 돌릴 수 없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투심 위가 있다. 그런데, 금요일 인사발령이 떴다. 벤처 본부장님이 새로 오셨다!! 본 건이 첫 투심 위가 되었다. 전투의지를 급상승시켰다. 다른 창투사에 만약에는 증액도 요청했다. 6개 창투사에서 모두 통과되었다. 7월이었다.
업체는 연초에 국책 협의회에 개발 자금 20억을 신청했는데, 통보가 왔다. 3개 이상의 창투사에서 메칭 투자를 받으면 된다. 짧은 기간에 IR, 투자의향서 제출, 검토, 투심 위, 계약하고, 납입까지. 그것도 3개사 이상에서. 쉽지만은 않다. 창투사가 개발자금이 있다고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 전년에는 2개 기관만 모여서 실패했다. 공식 일정 전에 완료한 투자는 인정되지 않았는데, 아직 계약도 하기 전이었다. 시점이 잘 맞았다. 협의회 규정과 요청사항을 반영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절차였다. 협의회 차원에서 유료 회원사를 대상으로 IR 하고, 투자의향서를 받았다. 11개 창투사가 제출했다. 새로운 창투사가 끼면 복잡해진다. 일일이 양해를 구했다. 킥오프 미팅에서 헛걸음 시킨 기관들에게 미안했다. 다 아는 분들이었다. 그날 제일 더웠다.
그런데,,,6개사 모두가 회원사는 아니었다. 미가입 3사는 이제라도 가입하거나 수수료를 내야 한다. 몇 억 투자하는 데, 본계정 수천만 원을 쓰자고 심사역이 창투사에 이야기 꺼내기는 어려웠다. 멀티-클로징도 생각했다. 협의회에서는 메칭 투자 전후로 몇 개월 동안은 다른 투자가 없도록 권고했다. 난감했다. 개발자금을 포기할 수도, 고생한 3사를 배제할 수도 없었다. 설득했다. 협의회 담당자도 고생했다. 언제부턴가 사전 메칭을 하면서 진행되었다. 나중에는 사전 계약도 포함시켰다. 시장을 반영한 것이다. 성과도 좋았을 것이다.
딜은 마무리되었다. 9월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정이 지연되자, 은행에 브릿지론도 알아봤는데, 하필 그때 지점장이 바뀌었다. 기존의 투자의향서로는 안되고, 투자계약서를 달라고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자금이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지역의 고용창출 1위 기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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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받을 때는 적어도 2년 치 운영자금은 투자받으라고 권한다. 1년은 짧다. 레벨업이 있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매년 수개월, 이렇게 반년을 투자유치에 매달려서는 실력 발휘도 안된다.
자금이 있을 때 다음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마무리까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조금 더 버텨서, 조금 더 나은 조건에 시간을 보내지 말자. 그 시간에 본질에 집중하자. 미세한 단가, 지분율보다 적절한 투자금액, 시간 확보가 파이를 키운다.
시장은 몇 년을 주기로, 좋았다가 경색되기를 반복한다. 사업환경도, 투자 쪽도 그렇다. 1, 2년에 확 변할 수 있다. 투자할 수 있을 때 투자하고, 투자받을 수 있을 때 투자받아야 한다. 앞으로도 지금 같겠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지금이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