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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May 03. 2016

32. 쇠귀에 경읽기가 안되려면


피처폰 시절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로 매출 200억을 올렸다. 세 번째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업체는 벌써 코스닥에 상장했다. 사장님은 전직 PD. 뽀글 파마로  머리가 두배로 커 보였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콧수염은, 일본인 오타쿠를 연상시켰다.


그 시절 통신사가 데이터 분야별로 지정한 “마스터”는 이권이었다. 선생님이 지명한 “반장”같았다. 콘텐츠를 선택하고, 랭킹을 정하고, 마케팅도 했다. 부족하다 싶으면, 또 돈 된다 싶으면,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보 이용료의 일부를 가져갔다. 통신사는 데이터 트래픽이 늘었고, 정보이용료도 먹었다. 인기 있는 몇 섹터는 거저먹는 거였다. 유저들의 주머니를 잘 털어냈다. 이익을 수십억 도 만들어 냈다.


통신사 Walled Garden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걱정할 시절에,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이익을 얻어갔다. 월정액으로 캐주얼 게임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일본의 사례도 벤치마킹했다. 통신사는 이 트래픽은 과금하지 안 왔다. 사용자가 조금씩 증가하고, 트래픽이 늘면서, 통신사는 슬슬 부담이 되었다. 아직 돈도 못 벌었는 데, 서비스를 더 키울 수 없었다. 개발비는 손익계산서에, 대차대조표에 흔적을 크게 남았다.


이즈음에 아이폰이 출시되었다. 주주들은 걱정했다. “마스터”에 집착 마라고 조언했다. 대답은 “글쎄요”, “아직은”이었다. 현금은 저리로 받은 대출금까지 아직 90억 도 넘게 남았다.


콘텐츠 시장에서 통신사의 힘이 빠졌다. 시장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선생님이 지명한 반장은 할 일이 없었다.  캐시카우가 사라졌는데, 인력구조는 그대로. 주주총회마다 비장의 카드들이 등장했다. 가챠 게임, 야구게임, 퍼블리싱 등. 그렇게 몇 년이 반복했다. 사장이 다시 직접 게임에 뛰어들었다. 역부족이었다.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주주간담회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앞서 투자한 심사역들이 지적을 했다. 작년에 말했던 계획과 엇나가는 이유를 물었고, 대책을 요구했다. 비교회사 대비 수익률이 낮다. 비용 효율화가 필요하다. 가능성 없는 사업은 접자 등.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실망했고, 조합 만기가 되자, 상환받고, 매각했다. 이제 내가 가장 오랜 투자자가 되었다.


사장과 경영진을 믿었다. 그들은 부단히 노력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나지 않고, 사장의 교주 같던 카리스마는 바래졌다. 투자자들에게 우겨가며, 선보 상하고 대우해줬는데, 알짜 직원들이 제갈길을 찾아 떠나갔다. 현금이 줄어갔다.


호주의 듣보잡 업체와 매각안도 논의했다. 지푸라기였다. 이제 현금이 부채만큼도 남지 않았다. 은행은 일부라도 갚으라고 했다. 마지막 시도를 해보려고 법정관리도 고려했다. 시간은 무심했고, 결국 폐업되었다.

투자자와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했던 부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폰 아이폰 할 때, 귀담아들을 걸. 큰 그림을 못 봤다고. 정액제 서비스가 폭망 했을 때, 빨리 인정할 건 인정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현금이 막 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투자자들의 의견이 좀 더 의미 있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사장에게 심사역의 말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한다. 서생의 과대한 걱정이나 책상머리의 괜한 참견이지는 않을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걱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나에게 귀를 열어줄까? 신뢰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내가 찾은 대답은, 솔직 함이다. 과장되지 않는 담백함이다. 나도 내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상이나 가정보다는 현재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작은 의미를 나눌 때 신뢰도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보여주고, 들려주기 전에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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