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병철 May 15. 2016

33. 내가 하는 일부터 먼저 알아야


구로디지털단지를 가는 길에 보라매 공원을 지나갔다. 예전에 그곳에 세무 ASP를 하겠다는 벤처가 있었다. 창업자는 회계사였다. 입사 동기의 첫 번째 투자였다. 그도 회계사였다. 5개 창투사가 3억씩 5억씩 그렇게 20억이 넘었다.


9월에는 600 여 유료 고객을 확보했다고 했다. 아직은 작다. 발전을 기대했었다. 연초에 가결산 자료를 받았다. 매출은 5억 남짓인데, 채권이 2.8억. 1월엔 어떤 회사에 투자도 해놓았다. 아무 상의도 설명도 없었다.


투자자들이 모였다. 사업 현황을 파악했다. 서류를 요청하고 사실을 파악했다.


고객은 없었다. 2.5억이 용역 매출이었다. 12월 말 현재 미회수 채권이었다. 1월 그 매출처에 4.8억 투자했고, 그제야 채권이 회수되었다. 나머지 매출도 by-pass 성, 손익과 무관했다. 의심스러웠다.


사장님은 몰랐다고 했다. 그게 잘못된 일인지 몰랐다였다. 믿기 어려웠다. 믿는다 해도 책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 직업군에겐 사회적 요구 수준이 있다. 소위 알만한 사람, 그들에겐 책임이 더 엄중해진다. 가중처벌. 나쁜 죄질 이런 말이 나온다.


심사역도 전문가다. 그에 맞는 자질을 요구받는다. 유능한 관리자에게 필요한 전문 지식,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도덕적 수준, 경험을 통해 구축한 현장감을 가져야 한다.


심사역은 우선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회사에 투자하는 직업으로, 기본적인 토대다.


투자 검토할 때 업체를 이해하려고 서류를 요청한다. 실사 때도 서류를 확인했다. 주주명부, 조직도, 급여지급대장, 직원 현황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일반과세 부가가치세 신고서, 채권 관련 약속어음, 잔고증명서, 세부 계정 과목별 장부, 매입처별 세금계산서 합계표, 투자회사 유가증권 보호예수 증명서 등


부끄럽지만,  그때는 이런 자료들이 서로 어떻게 연계되는지, 영향을 주고받는지 잘 몰랐다. 중요성의 관점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어떤 서류는 추가로 요청해도 되는지. 어떤 건 시간이 걸리고, 어떤 건 바로 받을 수 있는지. 같은 내용을 어떻게 다른 문서로 대체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왜요 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혔다.


잘 모르면, 원칙, 관례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의례히, 막무가내로 요청한다. 일단 다 달라고 한다. 안 볼지라도. 의미를 모를 지라도. 그러면 업체의 누군가는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많은 경우, 역시 이쪽 비전문가인 사장이 직접 한다. 핵심 업무에 잡 중 할 시간을 빼앗기고. 휴식 재충전할 시간이 줄어든다. 갑질이다.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갑질은 갑질이다. 모두 손해다.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면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앗다. 핵심에 집중할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시간은 벤처가 대기업과 유일하게 공평하게 가진 리소스다. 더 값지게 쓰여야 한다.


우선 내 업무부터 이해하자. 왜 이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 유연성이 생긴다. 잘 알면 겸손해진다. 지식보다 무지가 더 자신감을 준다. 모르면 맹목적이다. 무모한 자신감이다. 자질을 갖추자. 또 전문가의 책임은 더 엄중하다는 걸 기억하자. 외부 네트워킹만큼 내부 역량 강화가 우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