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가장에게 하챦은 일은 없다.

2025.08.09

by 고병철

알고 지내던 창업자들을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요즘 어렵다고 했다. 창고 겸 사무실로 옮겼고, 오백 원 커피를 파는 슈퍼를 찾았다. 내가 오곡라떼를 샀다.


새파란 청년이던 그는 이제 마흔 즈음,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동업자에게 악재가 겹쳤다. 절친이던 두 사람이 함께한 지도 꽤 되었다. 창업을 하고 나서는 대화의 주제가 오히려 좁아졌다고 했다. 사업에 영향을 줄까, 못 할 얘기는 서로 덜 묻고 조금 떨어져 지켜만 보게 된단다.


지금은 귀로에 서 있다고 했다. 계속할지, 다른 걸 할지. 나 역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던 때가 떠올랐다. 다만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이 약인가. 얼마 전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 마음이 전보다 편안하단다.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여섯 살 아이가 주기율표를 완벽히 이해한단다. 이미지로 박제하듯 저장돼 있는 것 같다고. 좌우와 대각의 위치, 성질까지.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한단다. 그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펴졌다. 빛이 났다. 어깨도 올라갔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이걸 왜 모르지 했단다. 최근에야 부모도 다 알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부부가 모두 최상위 이공계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성실했고, 착고, 똑똑했다. 가장이다. 못 할 하찮은 일은 없다. 가장이 해서 부끄러울 일도 없다.

당신의 인생과 경험을 살 사람은 계속 나타날 거다. 나도 대기표를 뽑을 거고. 힘들면 밥 먹으러 와.”


꺾이지 않겠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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