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엇지만 지금이라도

2025.12.31

by 고병철

올해 내가 한 소중한 일은 만남이다.

더 늦지 않게 뵈어야지, 애썼다.

‘이제 와서 굳이, 왜’라는 걸림돌을 빼야 했고,

그분들의 답을 기다리고 듣는 것은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 나를 미소로 바라봐 주던 분들이 있었다.

먼저 “한번 보고 싶다”고 말을 건네주신 분도 있었다.

머뭇했다.

그분들이 기억하고 기대하던 모습에

내가 미치지 못한 건 아닐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삼 년 전, 한 분이 돌아가셨다.

감사 인사를 미처 전하지 못했는데.

비가역적인 시간 앞에서

후회만 남았다.


아차 싶었다.

다른 분께 뵙자고 청했다.

이제 그분이 주저하셨다.

연세가 더 들었고, 거동이나 행세가 신경 쓰이셨을 것이다.

그분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실 거다.

감정의 시간이 엇나갔다.


다른 한 명에게 연락했다.

어릴 적 옆집에 살던, 한 살 아래 친구였다.

도회지로 이사 간 지 40 여년,

그의 딸은 내 후배가 되었고,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날 좋은 봄날,

그의 놀이터 텃밭에서 만났다.

그는 항아리 삼겹살 수육을 준비했고,

나는 가장 비싼 술을 꺼내 갔다.


어릴 적 얼굴이 불쑥 드러났다.

초여름 한나절,

그동안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한 겹 담 너머, 서로를 감출 재간이 없었다.

초라한 우리 집 내력이 모두 드러나고,

그의 집 사정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서로를 위로했다. 조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 시간을 내어

그 집 아주머님을 뵙고 식사 한 끼를 대접했다.

울 엄마 만큼 착하셨던 그분은

“야야, 길에서 보면 모르겠다”며

연신 손사래를 치셨다.

그분의 삶을 더 힘들게 했던 착함은 더 깊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분을 뵈었다.

또래의 사랑방 같았던 친구 집, 그 어머님.

분별력 없는 어린 눈에도 지성과 미모, 실행력이 돋보였던 분.

친구와 사는 지역이 달라지며 소식이 멀어졌다.

그 아버님의 부고가 날아왔다.

아, 이건 또 하나의 시그널이다.

한 사람의 부고가

남은 자들을 마주보게 했다.

그 어머님을 뵈었고, 소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고향은 조그만 동네.

예전, 울 엄마와 나는 작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옛날 이야기를 보채듯 말을 시켰고

귀찮아해도 울 엄마는 술술 풀어냈다.

울 엄마와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 이야기와 어릴 적 철모르던 영특한 나의 기억이

그 어머님과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었다.

현명하신 그 어머님의 존중으로

작은 대화가 일상으로 조금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