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일은 내가 전문가

by 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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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활동의 1차 결과물은 투자 내용과 업체와의 관계를 정의하는 투자계약서이다. "표준"이라는 계약서를 이해하면 많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고, "제대로" 이해하면 변화된 상황에 맞게 수정도, 재해석도 가능하다.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여러모로 좋아 보이는데, 그만큼 이해와 주의도 필요하다. 감당하지 못하는 날카로움은 도리어 나에게도 위험 요소이다. 예전 힘들었던 경험을 소개한다.


투자 협상에서 실적을 기준으로 보통주 전환 시 주식수를 조정하는 refixing을 넣곤 하는데, 대부분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전환비율이 높아지게 된다.(투자단가는 낮아지는 하향 refixing),, 그래도 아주 가끔, 아닌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때 생각지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H사는 12월 하순 투자를 받아 자금도 확보하고, 부채비율을 낮추어 차환 금리도 낮추길 원했다. 일본 회사가 독점하던 폰카메라의 필수 부품을 대체해, 효리폰 등으로 실적이 매월 갱신되고 있었다. 사장님은 실적이 기준을 초과하면, 상향 refixing을 요구했다. 정말로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고, 아주 순조롭게 상장되었다.


문제는 상장 후... 매각을 위해 전환 청구하면 우선주 10주가 보통주 x 주로 주식수가 줄게 된다.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감자(!!!)로 해석한다. 주총 특별결의와 채권자 보호절차가 필요하다. IPO로 대표의 지분은 더 낮아졌고, 우호지분은 이미 exit 한 후라, 특별결의도 쉽지는 않았다. 금융 채권자가 조기상환을 요청하면 수백억을 일시에 갚아야 한다. 투자계약상 IPO가 되면, 상환권은 자동 소멸되었다. 이제는 상환도 요청할 수 없었다. 당연한 전환권을, 행사 때 (이사회, 주총, 채권자 보호절차 등) 다시 허락(결의)을 받아야 하는 상황. 곡절 끝에 전환에 성공했지만, 해법을 고민하는 동안 빛나던 투자는 죽 쟁이로 변했다. 얼마짜리 교훈인가. 거의 반년을 맘 졸였다. 그래도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사장님께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후 refixing은 하향으로만 하고, 상환권 소멸은 IPO 1년 이후로 늦췄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했다.( 하지만, 요즘도 시장에선 이런 구조가 보이고 있기는 하다.)


법무법인의 리뷰를 여러 번 받았지만 그들은 고민하고 있는 것을 검토하지, 고민하지 못한 것까지 검토하지는 못했다. 고민은 남이 대신해주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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