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병철 May 30. 2016

35. 발로 듣는 이야기

편지를 받았다. 영어로 쓴 팩스였다. Mr. Lee(관리업체 대표이사)가 매출을 속이고, 엑스트라 머니를 받는다. 프라이빗 홍콩 계좌가 있다. 직원들은 이미 알고, 투자자를 속이고 있다고 했다.

그 회사는 삼성전자 방송기술인력, 해태전자 Car Audio 기술인력, 해외 ODM 개발 영업 인력들이, 차량용 DMB 단말기를 개발했다. 필립스에 ODM으로 납품하고,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었다.


성장과 몰락이 드라마틱했다. 매출 97억이던 회사가 3년 뒤에는 602억으로 급상승했다. 이후 300억으로 떨어지고 KIKO까지. 그해 손실 57억, 다음 해 손실 49억.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DMB 시장은 더는 성장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비용을 줄이고, 지금이라도 매각하기를 원했다. 창투사 지분이 많았다. 마땅찮은 사장님은 옆에 있던 CFO에게 의견을 물었다. CFO는 당황했다. 평소에 그런 고민을 나누지 않는 티가 났다. 사장 혼자 다 해 먹는 그런 회사였다. 이듬해 1월 서둘러 패키지로 함께 그 회사 주식을 매각했다. 그 편지는 2월에 받았다. 회사에 대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줬다.

.....

전화가 왔다. 이름을 들은 듯 만 듯. 투자업체를 그만둔 사람이었다. 사장님의 행태를 비판했다.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유학 간 딸이 회사차를 쓰는 등 공사를 구분 안 한다고 했다. 대표님이 좀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실만 들었다. 천천히 확인했다. 회사가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이익도 쏠쏠했지만, 미련을 버렸다. 우선주를 상환 청구했다. 협의는 여러 번 했지만, 방향은 관계 청산이었다.

.....

투자자보다 직원들이 회사를 더 잘 안다. 회사와 사장님의 민낯을 보며 일한다. 회사는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 외부자의 제한된 관점을, 그들이 보완해 줄 수 있다.


퇴직한 직원의 솔직한 의견은 중요하다. 그들이 쉽게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심사역은 직원들과도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고 싶을 때, 찾을 수 있고, 들어는 줄 거라는 공감대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주 방문한다. 지나가다 그냥 차 한잔 얻어마시러 들런다. 회의는 투자기업에서 한다. 직원들과 마주치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테리어, 직원들의 자리 배치, 그들의 표정을 보고, 이야깃거리를 얻는다.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있는 가도 살펴본다. 화장실도 간다.


때로는 소소한 변동이 큰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런 걸 말없이도 알아준다면 경영진과도 허심탄회하게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말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귀로만 듣는 것도 아니다. 눈으로도 이야기하고, 발로도 듣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