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살 좋은 가을, 대부도로 워크숍을 가는 날. 나는 그날도 온비드에 투자기업 주식 공매를 등록했다. 2명이 조회했다. 입찰하지는 없었다. 유찰된 화면을 캡처했다. 다음날, 최저입찰가를 20% 내려 또 등록했다. 4일째였다.
운용기간 6년은 지났고, 청산기간 1년도 다 가고 있었다. 출자자들은 더 이상 시간을 주지 않았다. 조합을 해산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투자자산을 처분해야 했다. 아주 예전에는 운용사가 평가해 떠 앉기도 했다. 문제가 많았다. 부실기업은 대부분 회생하지 못했다. 그럼, 운용사도 부실해졌다. 극적으로 턴어라운드 하면? 의심을 받는다. 출자자와의 신뢰는 이 업의 생명. 불신은 더 큰 문제다. 어떻게든 제삼자 거래를 통한 현금화 해야 한다.
그 회사는 완전 자본잠식, 지속적인 적자였다. 회계법인의 평가는 (상증법상) 0원이었다. 캠코에서 공개 매각을 시도했다. 주당 150원으로 시작했고, 마지막 날 60원에도 없었다. 기한 전에 겨우 매수자를 확보했다. 액면가 500원의 십여 배 할증 투자가, 6년 뒤 주당 수십 원으로 돌아왔다. 이런 작업에 보람과 자부심이 있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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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대충 겉은 번드레 좋아 보이는데, 그 속은 기대와는 다른 경우다. 심사역이라는 직업도 좀 그렇다.
좋은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한다. 기업은 성장해서 IPO 한다. M&A 되기도 하고 투자수익을 얻는다. 이 과정을 직업적으로 반복, 계속한다. 신산업이 형성되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도 있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보상도 있다. 하지만, 모든 투자가 이렇지는 않다.
2015년 한 해 동안 IPO 기업 중 60개 업체가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던 업체라고 한다. 스펙과 합병해 13개 업체가 상장했다. 같은 기간 1,000 여개 벤처기업에 2조 넘게 투자되었다. 벤처투자가 유지되려면, 투자받아 상장된 70 여 업체에서 2조 이상이 회수되어야 한다. 그래야 똔똔이다. 비용, 수익은 없다손 치고라도. 업체당 약 300억이다. 투자금액의 대략 15배. 만만치 않다.
IPO 된 기업들의 시총 평균이 대략 1,000 ~1,400 억원이다.(공모가, 시초가 기준) 투자하려는 돈은 많다.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심사역의 남모르는 고민과 경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통계적으로만 본다면, 투자는 어렵다. 지금보다 높은 미래 영역을 찾아야 한다. 심사역은 대박을 자신하는 벤처기업과 꿈을 공유한다. 현실에서는, 업무의 대부분은 결국 IPO 되지 못하는 투자 건과 관련된다. 재미없다. 보람도 없다. 어쩌면 이게 일상이다.
심사역이라는 직업은 본인의 판단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필수다. 거기에 더해, 끝없이 발전하려는 노력과 새로운 가치를 찾는 창의력, 뭔가를 추구하는 치열함. 그런 것이 몸에 맞지 않으면, 심사역이란 직업은 딱 빛 좋은 개살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