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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Jun 29. 2016

39. 어떻게? 아니 무엇을!


공항은 묘한 설렘을 준다. 출장이었다. 일찌감치 도착해 짐도 부치고, 출국신고도 했다. 9시가 지났다. 보딩이 시작되었다... 이제 출근하셨겠지.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되었나요? 투자회사 A사의 CFO는 좀 머뭇했다. 미달입니다.
.....
A사는 IPO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곧이어 신주발행 공모를 했다. 자금을 조달하고, 지분 분산 요건을 맞춰야 한다. 공모 희망가액은 하한 10,500원, 상한 12,500원. 공모가는 하한보다 낮은 10,000원에 결정되었다. 이것부터 불안했다. 이틀 동안 청약받았다. 공모주 경쟁률이 수십대 일, 수백 대 일도 다반사인데, 첫날 0.24:1. 다들 첫째 날은 그랬으니까. 둘째 날을 기대했는데, 0.62:1로 마감. 미달은 2년 만이었다.  


A사가 공모자금을 모으는 데는 문제가 없다. 경쟁률이 어떻게 되던, 주관사가 신주를 총액 인수한다. 주관사는 청약자들에게 대금을 받고 비율대로 주식을 배분한다. 초과된 금액은 환불해 준다. IPO가 끝나면, 공모금의 몇%를 발행사한테서 받는다. 주관사의 주 수입이다. 또, 청약률이 높으면 그만큼 청약대금도 늘어난다. 공모금의 수십 배가 청약과 환불, 그 며칠 동안 증권사로 들어온다. 이자도 없는 예치금은 수익원이다. 그런데, 미달이라니. 이제 청약 잔여분을 주관사가 다 떠안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랴부랴 공모기간을 이틀 연장했다. 그래도 미달이었다.


공모주 시장에서 미달은 때가 되면 나타났다. 주식시장이 냉랭하여질 즈음 사달이 난다. 운도 없게 하필 인기 많은 대형주가 그때 IPO 했을 수도 있다. 공모자금이 그쪽으로 쏠린 경우다. 하지만, 주범은 대부분 공모가다. 높은 공모가. 발행 사는 높게 받고 싶다. 주관사는 안전하게 하고 싶다. 공모총액이 커지면 주관사 수수료 수입도 늘어난다. 하지만 미달되면? 인기 없는 주식. 주가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리스크 싫어하는 증권사 IB 부서는 이런 상황이 딱 질색이다. 사실, 미달만 아니면 주관사, 발행사 모두 행복한 데, 그게 어렵다. 진통이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상장하자 바로 미끄럼이다. 1년 남짓 동안 1/5 토막이 났다. 900억대 시가총액이 200억이 깨졌다. 그다음 엄청난 반전이 나왔다. 줄기차게 올랐다. 최저가 대비 약 20배. 시총 약 2,900억. 업종 대표주, 우량주로 거듭났다. 이후 1,400억으로 하락했다 다시 2,900억으로 상승하기를 몇 번을 했다. 지금은 다시 소형 소외주가 되고 말았지만.
......
상장 10년의 변화다. 아이템은 핸드폰 부품이었다. 기존 아이템이 시들해지면, 새 아이템으로 도전했다. 역시 핸드폰 부품이었다. 시장의 절대자는 매년 사업을 조여왔다. 좋은 시절이 몇 년 가기 어려웠다. 전방시장이 정체되자 부품은 더 빨리 시들었다. 박스에 갇힌 사업이었다. 핸드폰이나 되니까 그렇게라도 성장했는지 모른다.

전방시장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심사역이 전방시장을 봐야 하는 이유다.


벤처는 성장이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 좋은 아이템을 “어떻게" 싸게, 좋게 만들까 보다 때로는 "어디에" 쓰이는 "무엇을”이라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
상장까지 8년. 그 후 10년. 긴 세월을 지켜내신 것도 대단하십니다. 지하 1층 좁은 공장. 약품 냄새 속에서 일궈낸 성장을 기억합니다. 지금의 침체를 벗어나 다시 한번 도약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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