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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철 Oct 13. 2016

46. 고개를 숙이자.

작디작은 국내 주식시장을 벗어나, 나스닥 상장사에 매각. 뽀대 나는 일이다. 기쁨은 잠시. 끝날 때까지 가시밭길이었다.
....
대표 펀드 메니져가 퇴사해 조합을 통째로 맡았다. 투자는 완료되었고, 몇 년 뒤 해산해야 했다. 십 수개 업체를 하나하나 리뷰했다. 그중 RF 전문 업체가 있었다. 이미 나스닥 상장사에 100% 인수되었다던 업체다. 매각 수익도 충분하고, 팔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막, 그게 쉽지 않았다. 

매각 계약은 지난해 4월에 했다. 그 대가로 현금과 인수회사의 주식(ADR)을 받기로 했다. 실적이 좋으면 현금을 더 받는 조항도 있었다. 주식은 Lock-Up 해야 했다.

시작부터 꼬였다. 신규 ADR 등록 자체가 어려웠다. 신고서에서 인수 가격 평가가 문제였다.  Stock Option 평가를 블랙숄즈 모형으로 계산했는데, 매각하는 측에서는 미래 현금흐름 현재가치 할인 모형으로 했다. 평가액이 달랐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치 평가 보고서 전체가 의심받았다. 로펌이 나섰다. 몇 달이 지나, 10월 중순 겨우 등록되었다.


이제 주식을 Lock-Up 해야 한다. 에스크로 할 주식을 입고할 계좌를 주주 41명 각각 개설해야 했다. 미국 계좌 개설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개인 주주들은 혼란에 빠졌다. 에이젼트는 S 증권사에 가서 미국 주식 계좌를 만들라고 했다. 절대 ADR용이라고 말하지 말란다. 복잡해진다고. 

실적은 좋았다. 매각대금이 추가적으로 입금되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경우는.

시간을 흘렀고, Lock-Up 기간도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 주식을 팔 수가 없었다. 에스크로 꼬리(Tag)를 떼고, “보통" 증권으로 만들어야 팔 수 있다. 나스닥 스몰캡, 그중 아주 주식에 대해 이 작업을 해줄 대형 증권사는 없었다. 마땅한 증권사를 찾는 게 어려웠다. 애를 태우며 시간은 흘러갔다. 

9월, 홍콩에서 증권사를 찾았다. 이제야 팔 준비가 됐는데,,, 한 달 전에 리 만사태가 터졌다. 인수 계약할 때 주당 23,000원이 반토막이 되었다. 팔 때 이익은 다 잡았었는데, 이제 팔면서 매각손실을 잡아야 했다. 주당 8,000원에 조금 팔고, 기다렸다 팔고 팔았다. 다음 해 7월까지, 마지막에는 주당 2,800원에 팔았다. 평가액 27억은 현금 6.3억이 되었다. IRR 80%는 IRR 44%로 변했다.

보호예수, 한국에선 어렵지 않은 일이 2년 반 걸렸다. 환호는 씁쓸함으로 돌아왔다.  좋은 기회는 살리지 못했고, 날아갔고, 수험료는 컸다.
........ 
투자에서 시간은 돈이다. 실전에서 같은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으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처음 닥치는 일은 시행착오를 낳고, 수익을 날려 보낸다. 고객의 자금을 관리하는 자에겐 늘 준비가 필요하다.


뭐가 되었던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긍정적인 마인드 좋다. 다만, 시간이 돈인 투자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한된 기회에 적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안된다. 준비되지 않는 자신감은 오만함이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과 제때 잘할 수 있는 건 차원이 다르다. 조금의 군더더기를 없애려고, 프로선수는 매일 비지땀을 흘린다. 그렇게 준비된 선수에게 기회가 온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공부하고, 대비하자. 시장이 그 틈새를 알아채기 전에. 


세상 일엔 공짜가 없다. 오만을 버리자. 고개를 숙이자. 그럼 이마를 부딪히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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