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결산 스타트업들이 주총을 한다. 심사역의 3월, 이사회로, 주총으로 일정이 꽉 찬다. 예전에는 우편물이 수북했다. 3월엔 조합원 총회도 있고, 주총이 끝난 4월엔 사내 종합 보고도 있다. 이래저래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투자사와 심사역은 평소에도 자주 만난다. 형식과 내용이 자유롭다. 한데 주총은 다르다. 업계 동료이자 경쟁자인 심사역 외에도 주주면 누구라도 참석한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다. 주총은 이런 관계를 조율하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 실수가 평소처럼 양해받기 어렵다.
오늘은 이 업체 이사회, 내일은 다른 업체 주총. 짧은 기간에 일이 쏠리는데, 짜인 일정대로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한다. 심사역은 주주가 아닌 대리인. 주총 안건 결재도 받고, 해당 서류도 챙겨야 한다. 참석 전에 할 일이 많다.
안건 세부내용을 요청하고, 관련 자료, 사례도 물어보고, 다른 기관 주주들과 조율도 한다. 관리 서류철, ERP 자료 확인하고, 지난 결재 문서도 훑어본다. 빠진 자료가 있나 체크하고, 반성도 한다. 실적 리뷰, 의견 근거도 만들어 결재 올린다. 결재는 늘 긴장을 준다. 혹시 모를 송곳 질문이 있을까 조심스럽고, 혹 다른 건으로 불똥이 튀어 갈까 걱정이다.
위임장 인쇄하고, 내용을 확인한다. 주식수는 맞는지, 주주명은 정확한지. 재원이 여러 개 조합이면 확인 또 확인. 위임인 명판, 도장 잘못 찍으면 낭패다. 간단하고 당연한 일에 실수가 있어선 안된다.
한 건을 하고, 또 한 건을 여유 있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십수 개, 수십 개 업체를 짧은 기간에 겹쳐 처리할 때, 이 업체 저 업체 헷갈리고, 시간에 쫓기다 실수가 나오고, 또 다른 실수를 부른다. 남이 만든 체크리스트, 그다지 큰 도움 안된다. 알고 싶은 내용과 다르고, 정적이다. 연계성, 상대적 중요성, 플로우는 설명이 안된다. 그렇게 긴장과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간다. 문득 “종일 왜 이런 일만 하나” 싶다.
….
가만 보면, 어떤 일이던 프로가 되기 전, 반복되는 업무를 숙달하는 과정이 있다. 운동선수는 물론이다. 수도승한테 장작패기를 몇 년씩 왜 시킬까? 초보 수도승은 늦은 밤까지 일하고 곯아떨어진다. 공부할 시간도, 정신도, 체력도 없다. 매일매일 견디다 보면, 이력이 붙고, 요령이 생긴다. 힘을 뺀다. 회전력을 이용해 한번에 스위트 스폿을 때린다. 해지기 전에 끝나고, 그다지 스트레스도 없다. 개운하다. 날은 아직도 훤하다. 이제 본격 수행할 시간, 체력, 여유가 준비됐다.
해야만 하는 “이런 일들”을 일 같지 않게 해내는 과정, 심사역에겐 3월이 그렇다. 다양한 케이스, 시행착오는 대응능력을 높인다. 넓게도, 깊게도 보고, 빠르게 “숙달”된다. 진짜 내 지식, 경험이 쌓인다. 정보란 것들이 널려있고, 선무당이 많은 시대에 소중한 자산이다.
심사역에게 3월은 단기 속성반이다. 중요한 시기에, 하찮아 보이는 것에 발목 잡히지 않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